장편 소설 <화니단로 여행자들> 1장, 제4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니단에서 정확히 한 달을 보낸 뒤였다.
화니단에 더 오래 머물기로 결심한 거니?
해영이 물었다.
화니단에서 일도 구했어요. 칸은 못 찾았지만.
해영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늘 너만 좋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그런 그녀의 넉넉함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내 삶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해영은 돈이 많았고, 그 돈으로 나를 충분히 지원해주었다. 나는 부족함이 없어서 생겨 버린 여유 때문에 무엇이든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갈 시기도, 구직을 할 시기도 놓쳤다.
나는 언제부턴가 방안에 틀어박혀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미지의 공간에 있었다. 미지의 공간은 몇몇 장면들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그것은 분명 내가 기억해야만 하는 세계였다.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찰나에 스쳐 갈 뿐인 그것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시나리오나 소설을 조금씩 끄적대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미지의 공간을 복구해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방안에 틀어박혀 글만 썼다. 글을 쓴다는 핑계로 생각만 했다. 생각을 하다보면 잠이 왔고, 하루종일 잠만 잘 때도 있었다.
눈을 떠보니 삼 년이 흘러 있었다.
해영이 내게 금전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해영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떠올린 내가 증오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해영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런 해영의 따뜻함은 나를 홀로 설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은 모순적이었다.
해영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해영은 내게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화니단은 어때?
해영이 물었다.
좀 독특한 동네 같아요. 브리즈는 이상하고... 다 재밌어요.
화니단이 마음에 들었구나. 그럴 줄 알았어.
해영이 왜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화니단이라는 동네에 내가 짧은 시간만에 매혹된 것은 사실이었다.
몇 달 뒤에는 화니단로에 카지노가 들어설 것이다. 부유한 각국의 자본가들이 화니단로에 모일 것이고, 음식점과 카페, 각종 편의 시설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모양을 바꿀 것이다. 아마도 브리즈와 그 근방에 있는 클럽들마저 사라져 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화니단로에 머문지 막 한 달이 흘렀을 뿐이었는데도 나는 화니단이란 동네에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브리즈, 브리즈를 둘러싼 공간과 화니단의 역사가 곧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 사무쳤다. 낯선 동네에서 이런 감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공간을 찾아 헤매 온 것만 같았다. 드디어 발견했고, 이 공간이 브리즈를 끼고 조금이라도 그 모습을 간직한 지금이라도 화니단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브리즈에 있으면 딱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에요.
나도 어릴 때 그곳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었지.
나는 해영이 어떻게 화니단에 가게 되었는지, 브리즈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칸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또 아버지와는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해영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은 네가 다 알게 될 거야.
해영이 말했다. 해영은 보조작가를 핑계로 나를 화니단에 보내려고 한 것 같았다.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