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살 Nov 17. 2021

블랙홀과 오렌지 나무

나의 사랑스런 아프로펌 헤어스타일 2


블랙홀과 오렌지 나무


글 최살살


중학생이 되었다.  마음은 몸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나는 풀이하지 못하는 마음을 머리카락 깊숙이에 숨겨 두었다. 머리카락은 철창처럼 그것들을 단단히 가두었다.

나의 블랙홀 속에는 어린 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나는 둥둥 떠다닌다.

끝없이 운동한다.

소화시킨다. 많은 것을. 사랑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음과 탄생에 대하여, 아아 고통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엄마, 내 뱃살이 어때요?

예쁠 것이다.

언제요?

시간이 지나면.

엄마, 치매에 걸린 엄마의 엄마는 어때요?

예쁠 것이다.

손을 움직여야 한다면서요. 매일 알약도 먹고, 글씨도 쓰고. 다시 새로 연습해야 한다면서요.

그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둥둥 떠다닌다.

유진아.

유진아.

누가 나를 깨운다. 나의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수업 시간에도 늘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양말 속에 양손을 넣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발가락을 끼운다.

이렇게 하면 따뜻해.

나의 사랑이 말한다. 나도 아빠 다리를 하고, 양말 속에 손을 넣어본다.

예쁘다...

나의 사랑이 말한다. 이제 내 손에서는 눅눅한 발 냄새가 난다. 나의 사랑은 발 냄새가 나지 않겠지. 나의 사랑이 비실비실 웃으며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긴다.

뭘 봐!

나는 그 머리가... 웃기다고 생각해.

나의 사랑이 말한다.

깔깔깔. 넌 뭘 모르는구나. 여기에는 커다란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어.

나는 철창과 같은 머리카락을 젖히고, 숨겨두었던 블랙홀을 보여준다. 상큼한 냄새가 날 것이다. 내가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온, 오래 키워낸 나의 오렌지 나무.

유진아, 나는 네가 좋기도 하단다.

응. 응.

나의 사랑은 하복 셔츠를 벗고, 오른 팔뚝을 내 눈앞에 가져온다. 그 애의 팔뚝에는 나의 것보다 더 크고, 멋진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상큼한 향기에 코끝이 시리다.

유진아, 나는 아름다운 것이, 예쁜 것이 좋아. 예쁜 것이.

나의 사랑은 예쁜 것을 좋아하였다.


블랙홀 속에는 아이가 살았다. 아이는 무엇이든 빨아들였다. 꽉 물고, 놓지 않았다. 무엇이든 꼭꼭 씹어 꾹꾹 삼키고, 소화시켰다.

움찔.

꿈쩍도 하지 말아라. 자라야 하지 않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내 머리카락 속에는 개미와 무당벌레가 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