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고등학생 시절 막 문학을 사랑해보겠다, 다짐했을때 (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잡아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세상에 책은 너무 많았고, 이름만 들어본 작가의 작품, 베스트셀러 작품 등을 다 읽어 보기에 내가 문학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만났다. 매년 4월 문학동네에서 출판하는 젊은작가상은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문학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한 문학상이다.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 작품 중 한 해 동안 문예지를 비롯한 각종 지면에 발표된 신작 중·단편 소설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된 선고위원회에서 15편 내외의 본심 대상작을, 문학동네에서 위촉한 심사위원회에서 7편의 수상작을 선정하고, 그중 1편을 대상작으로 최종 결정한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는 총 일곱편의 작품이 실린다. 이 작품집을 읽으며 요즘 문학과 출판의 트렌드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뛰어난 작가들을 손쉽게 소개받고,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을 찾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의 영역을 넓혀 갈 수 있었다. 내 생일은 4월인데, 나는 요즘도 4월이 되면 선물처럼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받아보고, 즐겁게 수록된 작품들을 읽는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마의 작품집들을 즐겨 읽는다. 한 명의 작가가 쓴 작품집보다 아이디어도 더 신선하고, 여러 작가들이 썼기 때문에 이야기와 문체가 다채롭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지만, 내가 분명 좋아할 법한 작가님들을 운 좋게 만나기도 한다. 내 취향의 작품 한 편을 만나면 그 작가님의 전작들을 읽으며 적어도 한 달은 문학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낼 수 있다.
요즘은 한국 작가의 소설 혹은 고전 문학만을 편식해 독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단편 소설 특유의 꽉 찬 전개를 좋아하고, 이야기 중심 서사보다는 문체의 느낌과 전반적인 이미지를 중요시 하니, 당연히 외국 작가들의 단편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번역 과정에서 흐려지는 작품의 느낌 때문에 분량이 번역된 짧은 단편소설은 몰입해 읽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먼드 카버와 코널의 장편들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선뜻 <모든 빛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를 손에 쥐었다. 또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실린 만큼 내가 몰랐던 해외 작가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나의 편식 독서를 좀 멈출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뒤 역시나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빛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의 매력은 무엇인지, 몇 가지 전해보려고 한다.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부르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이다. <타임>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격찬을 받았다.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했 으며, 이후 70여 년 동안 과감한 편집과 비평, 인터뷰로 새로운 문학을 이끌고 있다. 지금 까지 발간된 잡지들을 모두 책꽂이에 꽂는다면, 그 길이만 3.6미터에 이른다.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작가뿐만 아니라 작가의 경력 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편집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파리리뷰>의 인터뷰에는 지금까지 헤밍웨이, 하루키,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수백 명의 작가가 거쳐갔다. <파리 리뷰> 의 인터뷰는신간이나 작가 홍보를넘어서 소설 기법과 글쓰기방식, 삶에 관한 진솔한 이 야기까지 이끌어내어 하나의 문학 장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명성이 높다.
<파리 리뷰>가 문학의 '실험실' 이라 불리는 이유는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이고 과감한 편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 책에 실린 작가, 작품들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데니스 존슨, 조이 윌리엄스, 레이먼드 카버, 이선 캐닌 등의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선정 배경도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한다.
<파리 리뷰>는 가장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단편소설을 결산하기 위해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에게 특별한 질문을 했다. <파리 리뷰>가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다. 또 왜 그 소설을 탁월하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빛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그중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선택한 작품을 뽑아 만든 단편 선집이다.
한 작품당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단편소설 작가 약력과 작품 본문, 그리고 이 소설을 선택한 작가의 약력과 해설지로 한 작품을 끝낸다. 총 서른 명의 글이 책에 쓰여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계적 작가들의 해제를 읽는 즐거움이 있었고, 문학 학습도 되었다. 장르의 대가들이 그 소설을 가장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서술한 해재 덕분에 문학을 더 깊이 있기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작가들이 많았다. 확인해 보니 국내에는 책이 단 한 권도 번역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다수였다. 낯선 작가들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조이 윌리엄스의 <어렴풋한 시간>을 특히 오래 읽었다. 불운한 소년의 시간과 공간을 내 앞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선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읽으며 환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것이 작품집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소설은 일기 같고, 어떤 소설은 매력적인 작위성을 가진 소설 같다. 또 어떤 작가는 여성이며 다른 작가는 남성이고, 어떤 작가는 흑인이며, 어떤 작가는 백인이다. 살아온 환경과 삶이 다양한 이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나의 세상도 무한히 확장되었고, 해외 소설의 매력을 느낀 건 당연하다.
한국 소설가들의 소설만 읽어온 독자들, 그리고 해외 단편 소설은 한국 독자의 취향이 아닐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 소설은 한국 독자들이 외국 소설에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구성이며, 뛰어난 작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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