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나에게 왕가슴은 무기였지
14살 때의 일이다. 같은 반에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한번은 운이 좋게도 그와 내가 짝꿍이 되었다. 우리는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아침 인사도 하고, 수업도 듣고, 야한 얘기도 하고, 그랬다.
하루는 3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 어떤 여자애 하나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걔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애는 내 옆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고, 여자애는 그의 눈치를 보더니 내 팔목을 잡아끌고 복도로 향했다.
소문에 의하면 내가 좋아하던 그 남자애가 수업 중에 힐끗힐끗 성실히 내 가슴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펜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을 때 그는 거의 대놓고 내 가슴골을 봤단다.
나는 일순 심각해졌다.
아, 좋아!!!! 나에게 영영 마음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그 남자애가 내 가슴에는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내 큰 가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여자애의 과하게 걱정스런 표정,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남자 화장실 앞 복도, 교실 창으로 보이는 엎드려 누워 있는 내가 좋아하는 그 애.
여자애는 진지해 보였고, 나는 그 애의 격양된 표정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너 지금 나 부러워서 그러지?’
나는 그 여자애 앞에서 미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난 가슴 큰 여자애지롱~ 후훟 부럽냐?
나는 이런 내 마음을 일그러진 표정 뒤로 숨기고는 말했다.
나는 엎드려 누워 있는 그 남자애의 귀에까지 다 들리도록 아주 큰 소리로 읊조렸다. 여자애는 용건이 끝났는지 그새 다른 여자애들이 모여 있는 교실로 쪼르르 달려 들어갔다. 어쩌면 내 가슴과 그 가슴을 본 남자애 얘기를 하고 있을지 몰랐다.
야 쟤가 최유진 가슴 본대. 역겹지 않냐…
나는 내 가슴이 크다는 사실이, 그 덕에 그에게 일말의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즐겁고, 재밌었다.
그날부터 나의 온 신경은 내 가슴, 오직 그것 하나에 집중되었다. 나는 하얀 하복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기는커녕 몇 개 더 풀어 보기도 했다. 꽉 끼는 하복 셔츠를 입고, 가슴을 한껏 내밀며 걸어 다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내 가슴에 오래 머물러 있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점점 양가적으로 변했다. 기분이 좋은 한편 부끄럽기도 했다. 14살의 내가 다름 아닌 창녀가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은 불쑥불쑥 찾아왔고, 나는 대체로 그의 욕망 섞인 시선을 즐겼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하복 셔츠를 벗고, 동복을 입어야 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긴 팔 셔츠 위에 조끼까지 단정하게 갖춰 입어야 하므로 내 가슴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니게 되었다. 그 남자애보다도 나에게 그 사실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그 무렵 내가 좋아하던 그 남자애에게는 새 여자가 생겼다.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옆에는 늘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자애는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 교실로 찾아왔다. 남자애에게 싸구려 젤리를 나눠주거나 남자애의 가디건 따위를 훔쳐 달아나는 방식으로 그 애를 교실 밖으로 유인하였다.
나는 그 둘이 복도 밖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지 않아 그 둘이 쉬는 시간에 교사 화장실에서 섹스를 한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남자애는 늘 야한 소문을 몰고 다녔고, 나는 그런 그 애가 조금은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애는 매일 점심시간이나 5교시 쉬는 시간에 남자애의 자리로 찾아왔고, 하루에 두 번 혹은 세 번씩 찾아올 때도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남몰래 째려보았다. 그러다 그 여자애의 가슴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 애의 가슴은 다른 중학생 여자애들의 그것처럼 작고, 작았다. 그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밀려왔고, 질투가 가셨다. 나는 수업 시간에 점점 더 자주 펜이나 샤프를 떨어뜨렸다.
하루는 남자애가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 여자애가 찾아왔다. 그 애는 남자애 필통에서 조그마한 포스트잇을 꺼내더니 남자애의 펜으로 뭔가를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나는 나 따위를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공간인 양 그곳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저 가슴도 조그마한 여자애가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여자애는 내가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한 문장을 뱉고야 말았다.
그 무렵 잘나가던 중딩 여자애들은 평범한 여자애들은 아랫것 취급하였다. 친구야, 따위의 기묘한 호칭을 불러대면서. 여자애는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복도로 사라졌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상태로 여자애를 한껏 노려보았다.
얼마 뒤 남자애가 돌아왔다. 나는 잠시 뒤 남자애의 책상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얘랑 사귀냐?”
남자애는 특유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왜?”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여느 때처럼 바닥에 펜을 굴려 떨어뜨렸다. 이제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책상 아래로 펜을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일부러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숙였다. 나는 남자애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몸을 조금 더 숙였다. 그리고 펜을 잡은 그 순간 나는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는 그 애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 나의 입가에서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남자애의 표정이 차갑게 식은 채였다. 선생님은 수업을 잠시 멈추었고, 다른 애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해 있었다. 통쾌해서 당장 교실을 박차고 나가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돌고 오고 싶었다.
그 뒤로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곧 동복의 계절이 돌아왔고, 나의 짝은 다른 남자애로 바뀌었다.
그랬다. 14살의 나에게 내 가슴은 무기였다. 어쩌면 여성이라는 내 성별도 그랬던 것 같다. 고작 큰 가슴으로 남자애의 시선을 빼앗아 올 수 있는 편안한 자리. 그것이 여성의 자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내 가슴을 함부로 주무르고, 구경할까 봐 매일 긴장하며 지하철을 타게 될 거라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나의 가슴은 자꾸만 변화하는 사물처럼 하루하루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 의미를 내포하게 될 거라는 것도 몰랐다.
그렇다. 나는 어린 여자애였다. 큰 가슴을 가진 어린 여자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