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라는 호칭의 이상함에 대하여
중학생 때 나는 남자애들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고, 두려워했다.
한번은 15살 때 어떤 남자애가 “너 아줌마 같애”라고 말했고, 고작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머리 없이 똥머리를 묶고 다니던 나에게 닌자 같다고 말했던 상민이(아, 난 이 애를 너무 미워하고 한편 좋아해서 아직까지 이 애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 말에 나는 심지어 왕 울어 버렸고 그 사건 때문에 다른 여자애들이 나를 그 애 앞으로 끌고 가 기어이 그 애의 사과를 받아냈다.
그때 그 여자애들의 사과 소동 때문에 나는 그날을 더 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자애들이 나를 막 대하는 것보다 더 싫었던 건 그 사실을 여자애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애들 몇 명에게 사랑받느냐에 따라 여자애의 가치가 매겨지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사랑 받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그게 잘 안됐다. 실패를 직시할 때마다, 내 외모와 모든 요소에 대한 실망감이 쌓일 때마다, 나는 하루하루 좌절했다.
“너 아줌마 같애”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사실 무덤덤했다. 조폭마누라, 왕만두 같은 지루한 별명들만큼이나 아줌마도 그저 그런 고유명사에 불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뒤 남자애는 몇 번이나 더 나를 아줌마 같다고 말했고, 나는 점점 그 애의 진지한 태도가 신경 쓰였다. “너 진~짜 아줌마 같애.” 그 애는 심각하게 나의 어떤 지점을 ‘아줌마’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나의 아줌마성을 기어이 찾아내 없애 버리길 강조하고 있었다.
‘아줌마’라는 호칭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반 여자애 K와 함께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K는 버스에 서 있었고, 나는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자기 친구와 시끄럽게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자 버스에 앉아 있던 한 아저씨가 큰 소리로 K에게 고함을 쳤다.
“거 아줌마 조용히 좀 합시다.”
K는 분명 교복을 입고 있었고, 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K가 학생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성인이든, 미성년이든 여성에게 아줌마라는 호칭이 얼마나 모욕적인지 그 아저씨는 잘 알고 있었다.
남자애의 “아줌마 같다”는 말이 서너 번쯤 반복되었을 때, 나는 나의 아줌마성을 찾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애가 나를 아줌마 같다고 말했던 순간을 복기하며 당시 내 행동이나 외모의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내가 교실에서 큰 소리로 말할 때? 머리를 아래로 묶고 있을 때? 얼굴이 조금 부어 있을 때? 그도 아니면 그 초록 가디건을 입었을 때?
나는 그 꽉 끼는 초록 가디건을 입었을 때 내 가슴이 커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학생주임 교사 때문에 알게 되었다. 주임교사는 내가 그 가디건을 입을 때마다 “그거 벗어”라고 꽤 강한 어조로 말하곤 했다. 나는 모범생이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순순히 들을 수도 있었겠으나 가디건을 벗으라는 그녀의 요구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내 멋대로 계속 입고 다녔다. 하루는 복도 저 끝에서 주임교사가 나를 가리키더니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치는 게 아닌가.
“내가 그거 입지 말랬지.”
아마도 주임교사는 내가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지나치게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게 달려와 공격적으로 가디건을 벗겨 가져갔고, 한 달 뒤에 찾으러 오라고 말했다.
한 달 뒤에 나는 그녀에게 가디건을 받으러 가 용기를 내 물었다.
“이거 왜 입지 말라고 하신 거예요?”
“부담스러우니까.”
주임교사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내 가슴에 닿아 있었다.
어쩌면 그 남자애가 내 큰 가슴 때문에 나를 아줌마 같다고 생각하는지 몰랐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그 가능성은 중학생인 나를 슬프게 했다.
우리 엄마는 나보다 가슴이 훨씬 크다. 엄마의 가슴은 젖꼭지가 유난히 크고 까맸다. 가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이 젖꼭지였을 정도다. 엄마의 가슴은 축 늘어져 있어서 푸딩이나 천사점토를 흉부에 붙여 놓은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엄마의 가슴은 아줌마의 가슴이었다. 엄마의 커다란 가슴 때문에 엄마는 더더욱 아줌마처럼 보였고, 나는 최대한 엄마와 달라지고 싶었다. 아줌마가 되기 싫었다. 그 무렵 나는 엄마만큼이나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나는 내 아줌마 같은 가슴을 가리기 위해 숨이 안 쉬어질 듯 몸에 꽉 끼는 브레지어를 입기 시작했다.
나는 3학년이 되었고, 초록 가디건을 목에 둘러 하복 셔츠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내 가슴 부위를 가리는 데에 사용하게 되었다. 다른 반이 된,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던 그 남자애는 복도에서 나를 마주쳐도 아는 척 한번 하지 않고 지나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