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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 Nov 30. 2023

찌찌용사 탈코일기

나의 속박된 찌찌를 위하여!

Molly bounds _ "How You Carry Yourself"


스물하나에 잠시 잠깐 몸담았던 인권 동아리에는 페미니스트 언니들이 많기도 많았다. 페미니스트 언니들의 외형은 전국 각지 페미니스트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는데, 왜냐하면 대체로 페미니스들이란 다른 것, 다른 것을 인정받고, 인정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특히 머리 스타일이 다양했다. 층을 많이 낸 초록 머리 언니, 삭발 머리 언니, 스포츠머리 언니, 바가지 머리 언니, 라푼젤 머리 언니 다채로웠다. 동아리실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세계 각지에서 공수해 온 신기한 과일을 파는 상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동물해방 운동가, 찌찌해방 운동가, 기후위기 위원장, 여성스포츠 본부장 뭐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운동을 해봐야 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도 찌찌해방 운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큰 가슴 때문에 노브라는 어려워 그쪽으로는 생각도 안 한다고 언니들한테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 언니들은 너의 몸을 너의 몸 그 자체로 사랑하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페미니즘이란 한 종류의 여성만 보호하곤 한다. 그러니까 나말야! 가슴 큰 여성도 생각 좀 해주란 말이다. 찌찌해방말고, 큰가슴 자신감 회복 운동 이런 것도 좀 하고 말이다.

 

각양각색 다양한 그들의 단 한 가지 공통점은 “멋지다” 였다. 이러나저러나 그 언니들은 꽤 멋졌다. 그들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체중 증가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잘 먹었고, 활동하기 편안한 옷을 입었다. 화장기 없지만 깨끗한 피부하며 애교 섞이지 않은 말투와 하이톤 고음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듯 보이는 낮고, 정제된 목소리. 외형도, 말투도 나는 그들의 모든 걸 따라 하고 싶었다.

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없이 살기란 언제나 나에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물하나의 나는 멋들어진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바로 그녀들처럼 말이다.


페미니스트의 제1 조건은 탈코르셋 실천이다. 그 당시엔 그랬는데 요즘은 그쪽 사정이 어떤가 모르겠다. 운이 좋게도 탈코르셋은 나에겐 퍽 쉬운 운동이었다. 얼굴에 뭘 찍어 바르는 걸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고, 액세서리 착용도 선호하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잘라야 했다. 모두가 꼭 머리를 잘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탈코르셋을 위해 도대체 할 게 없었던 나는 머리라도 짧게 잘라보기로 했다. 그게 뭐 별건가 싶어서 짧은 스포츠머리를 시도했다.

이런 걸 여성 운동이라고 할 수나 있나? 진짜 짱! 쉽잖아.

 

그날 밤, 당시 내 애인은 나의 변화한 헤어스타일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중국 부자 초등학생 같아.”

거울 속 나는 입안에 뭘 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고, 심지어 그 통통한 볼이 발그스레하기까지 했다. 너무 옳은 말을 잘도 하는 그 애가 미워서 내 외모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부러 크게 화를 냈다.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탈코르셋 비슷한 걸 한 나는 지나치게 귀여웠다. 작고 둥글었고, 머리도 짧으니까 영락없는 ‘아이’ 같아 보였다. 주체적인 여성처럼 보이길 바랐는데 다 망했다. 게다가 문제는 그놈의 가슴이었다. 중국 부자 초등학생이 가슴 큰 거 본 사람? 얼굴은 귀엽고 키는 작고, 머리는 밤톨 같은데 가슴이 크다니.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 입을 수 있는 옷은 제한적이었다. 치마나 원피스, 꽃무늬 블라우스 이런 건 옷장 구석에나 처박아 둬야 했다. 나는 언니들과 같아지고 싶었기 때문에 품이 크고 편안한 바지와 맨투맨을 찾아 입고 다녔는데 가슴이 커서인지 언니들과 똑같이 입어도 내가 더 부해 보였다. 언니들을 따라 이런저런 탈코 패션을 구현하기 위해 새 옷을 구매하는데 돈을 많이 썼다. 뭘 입어도 멋지긴커녕 못생기고 귀여운 초딩이 되어 버렸다.

 

한 달 뒤 머리 스타일에도 문제가 생겼다. 볼품없이 삐죽삐죽 자라는 스포츠머리를 가리고 다니기 위해 모자를 열심히 쓰고 다녔다. 내가 알던 탈코한 언니들 중 나처럼 볼품없는 머리의 소유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멋으로 간지났다. 그러니까 나의 머리도 그냥 아무렇게나 잘라서는 안 됐다. ‘멋져야’ 했으므로 3만 원을 주고 남성 고급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고, 몇만 원을 더 추가해 다운펌도 했다. 나는 그 뒤로 이 짓을 한 달에 한 번씩 했다. 갈 때마다 돈과 시간이 무척이나 아까웠다. 머리가 길었다면 그냥 묶고 다니면 그만이었는데 이런 머리는 끊임없이 관리해 줘야 했다. 짧은 머리를 한 한국 남자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탈코든 페미든 둘 다 신물나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치솟았다.

 

심지어 나는 어느 날부터 매일 꽉 끼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어떤 옷을 입어도 탈코르셋 태가 나지 않는 것이 다 이 커다란 가슴 때문은 아닐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스포츠 브래지어가 얼마나 꽉 끼었냐면 등에 붙어 있는 내 등살이 브래지어 밖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올 정도였다. 나는 그것을 입은 채로 밥을 먹을 때마다 자주 체했고, 명치 부근의 체기를 며칠 주기로 한 번씩 경험했다. 스포츠 브래지어는 스포츠를 위해 개발된 것이므로 가슴을 아주아주 꽉 잡아주는 게 그 역할의 전부였다. 나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입을 때마다 내 작아진 가슴이 좋아서 꾸역꾸역 그것을 입었다. 

그렇다. 그것은 다름 아닌 코르셋이었다. 나는 탈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코르셋을 조이고 있었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고자 시작했던 나의 탈코는 작위성으로 얼룩졌다. (탈코 드랙이 따로 없네)


짧게 잘랐던 머리는 죽도록 안 길었고, 나는 이름만 탈코인 코르셋 조이기를 여섯 달 동안 지속했다.

 

몇 달 전 한 여성주의 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때 나는 찌찌해방이라는 표어를 든 한 언니가 자기 찌찌에 검정 스티커를 붙이고, 상의 탈의를 한 채로 장내를 활보하는 광경을 보았다. 찌찌해방이라… 순간 아득해졌다. 나는 언니처럼 시원하게 찌찌를 해방하는 대신 성실히 구속해 두었던 지난날 나의 찌찌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진정한 탈코란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아니다. 나는 언니의 진한 화장과 몸 구석구석 붙어 있는 황금빛 반짝이를 바라보며 언니의 뒤를 무의식중 쫓고 있었다. 나는 비록 찌찌해방을 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속박된 찌찌를 페미 용사로 기억하겠다고 바로 그런 다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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