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빨리 남친 만들어서 우리 서로 세컨드 하지 않을래?
대학 3학년 때, ‘T**게스트 하우스’라는 프로그램 스태프로 로마에서 두 달간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한창 배낭여행이 붐이던 그때, S사에서 여름 동안 유럽의 호텔들과 계약하고 T**요금제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2~6박 정도의 무료 숙박을 제공했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 체험단에 참여했다가 스태프 욕심에 휴학 기간 그 이벤트 대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그 해 여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설레는 출발이었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호텔에 두 달간 기거하며 로비에 따로 부스를 설치하고, 그날그날 예약이 되어 있는 20~30팀의 배낭 여행객들 체크인/아웃을 도와주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이벤트를 기획해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거창해 보이지만, 스태프는 20대 후반의 언니 한 명과 현지에 사는 유학생 오빠, 나 이렇게 세명. 어느 정도 루틴이 잡히고 호텔의 이탈리아 사람들과 몇 번 얼굴을 붉히는 사건을 거치며 친해지고 나니, 별거 없었다. 한 주는 저녁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고, 또 어떤 주는 No show 고객용 빈 호텔방을 잡아 컵라면을 함께 끓여 먹고, 어느 날은 이탈리아 맥주 탐방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벤트라 불렀다.
유난히 분위기가 좋았던 맥주 이벤트에서 그를 만났다. 20대의 남녀들이 10명쯤 만나 신나게 웃고 떠들다 보니 마지막은 ‘사랑의 작대기’였다. 스태프도 참가하라는 강력한 요청에 못 이기는 척 참가했다가 그와 커플이 되었다. 진짜 장난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 부스에 데이트 신청 쪽지가 놓여 있었다. 집을 떠나오면 사람의 마음이 조금 말랑말랑 해 진다. 그날 일과가 끝나고 스태프 언니와 나, 그와 그의 친구는 로마의 여름밤 작은 식당에서 이탈리아 식으로 느리고 긴 식사를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2천 년 전부터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열심히도 걸어서 반들반들하게 해 놓은 돌바닥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는 몇 개월 정도 만난 것 같다. 만나면 즐거웠고 설레었다. 이 오빠 의외로 소심한가 왜 오늘부터 1일 말이 없지. 날이 추워질 때쯤, 그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오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 했다. 절친과 단 둘이 떠나는 배낭여행의 첫 번째 수칙이 ‘여친은 없는 걸로’이었다 했다. 찜찜했던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나는 그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마지막 버스 타는 거라도 보겠다고 정류장까지 따라온 그가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하자,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너도 빨리 남친 만들어서 우리 서로 세컨드 하지 않을래?” 그날 이후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고, 내 친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거지발싸개’가 되었다. 대체 그의 ‘여친도 좋고, 나도 좋다.’는 그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