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발싸개’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가구 회사에서 원버튼 투피스 유니폼을 입고, 매장에서 근무하며 영업과 디자인을 오가는 첫 번째 일은 할만했다. 단시간에 전문가 타이틀을 받고, 고객들에게 전문가적 조언을 해주는 것도 폼 나게 느껴졌었다. 두 번째 회사는 작은 회사라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누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시키지도 않았지만, 남의 돈으로 백지에 내 꿈을 펼쳐 그리는 것, 다양한 일들에 빵꾸를 내지 않는 것이 재미있었다. 작은 회사의 담당자이다 보니, 회사를 대표해서 만나는 이미 성공한 다양한 사람들도 자극이 되었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비록 학생 신분과 병행하는 계약직이지만, 그 간의 짬밥으로 ‘눈치 빠른 알바짱’ 역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벌이는 적었지만, 칼퇴 보장이라는 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다녔던 네 번째 회사도 대기업 특유의 타이트한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이제야 내 자리를 찾아 오래오래 있겠구나 싶었다. 돈도 많이 벌고, 타이틀도 폼 나고, 무엇보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커리어를 이어가는 멋있는 여자 선배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모든 일에는 더럽고 치사한 일들과 서러운 눈물, 터질 것 같은 두통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나의 셀프 토닥의 관점에서 보자면 종합적으로 좋았단 거다. 한 손엔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목에는 쭈욱 늘어나는 사원증을 매고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매일 집과 회사를 오가는, 나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것보다 마음을 다해 노력했던 일은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었다. 아빠, 엄마, 삼 남매, 할머니, 내가 어렸을 때는 사촌 오빠까지 최대 6명이 북적이며 살았으니 우리 세대에서는 제법 대가족이었다. 어렸을 때 2살 터울 여동생과는 피 터지게 싸우고, 7살 터울 남동생에겐 관심도 없었지만 두 사람 다 지금은 나에게 가장 큰 보물이다. 애들이 둘은 되어야지. 능력 있어 셋이면 더 좋고. 첫째를 낳아야 둘째도 낳는 건데, 첫째도 찾아오지 않는 상황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결국 우여곡절 재미없는 단편 소설 하나 쓴 끝에, 결혼 5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다.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은 나의 임신을 기원해 주면서도, 왜 진짜는 하나도 얘기해 주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까지 내 몸과 마음과 생각이 180도 달라지게 되는 거라고. 아이를 내 몸에 하루 2/3를 붙여놓고 그 사이사이 틈을 이용해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씻기도 해야 한다고 왜 얘기 안 해줬을까. 그러고도 천사가 나한테 찾아왔다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이 감사하게 될 거라고 왜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수면부족의 나날들에도 문득문득 새벽에 깨어서 그 작은 코에서 들숨과 날숨이 제대로 오가는지 확인하게 될 거라고 왜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뭐가 있는지 모르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 문은 뒤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해 보고, 아니면 말고.는 없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문을 지나쳐 새로운 세상으로 와 버렸다.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복직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화장을 하고, 북적이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워킹맘의 삶은 존경받아 마땅했었구나.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사는 주제에 머리에 꽃 달고 출근하던 선배, 동료들을 1도 배려하지 못했었구나. 그녀들은 수면 아래에서 정신없이 발을 놀리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떠 있는 백조들이었구나.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치 어려서 익힌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일에는 금세 적응해갔다. 밖에서 사 먹는 커피 맛도 좋고, 어른 사람들과의 잡담, 비욘드 스마트폰 세상에 대해서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회의도 좋았다. 집에 돌아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 너를 두고 일터에 갔었구나 싶게 보들보들 따듯한 아이가 통통한 기저귀를 차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자고 있었다. 출근 몇 주 했을 뿐인데도 사진으로 확인하는 내가 놓친 아이의 발전사는 눈이 부셨다. 매일 아침 아이를 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주문을 외웠다. 일도 좋고, 아이도 좋았다. 그 예전, 나의 즉결심판을 기다리며 둘 다 좋다고 이해 못할 말을 주절 거리던 ‘거지발싸개’가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양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