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승소골 삼층석탑
먼저 승소골 삼층석탑이다. 승소곡 삼층석탑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탑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경주 남산 승소골에 자리했던 아담한 매력을 지닌 탑이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작은데, 이는 9세기 신라 석탑의 특징을 반영한다. 9세기는 신라 사회가 혼란해지고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던 시기로, 기존 중앙 권력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종교의 위상에도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작은 규모의 탑이 유행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추측된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독특한 양식의 탑들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주 남산 승소골 삼층석탑 (출처: Culture & Hitstory Traveling)
승소골 삼층석탑의 가장 큰 특징은 1층 탑신 몸돌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보통 탑의 기단부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탑에서는 탑신에 새겨져 있어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기단에는 상다리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승소골’이라는 이름은 ‘승려를 태우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승려들의 화장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사천왕상은 아마도 이곳에서 화장된 승려들의 사리와 부처님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조각되었을 것이다.
경주 승소골 삼층석탑 설명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안내 현판이 잘 설치되어 있어, 박물관 주변을 산책하며 둘러보기에 좋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다음은 고선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7세기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 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에 세워져 있던 것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고선사는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어 지금은 그 터를 찾아볼 수 없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삼층석탑 양식을 보여준다.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넣어 입체감을 더했다. 주변의 나무 조경과 어우러져 더욱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상륜부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상륜부이다. 마치 귀여운 족두리처럼 생긴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가져왔다. 다만, 상륜부의 일부는 소실된 상태라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상륜부의 또 다른 특징은 노반의 형태이다. 보통 노반 윗면에 턱이 져서 복발을 받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탑은 반대로 노반 아랫부분에 턱이 져서 복발을 받치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노반(露盤): 상륜부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며, 탑신부와 상륜부를 연결함.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이 세워진 7세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로, 국가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안정감 있고 웅장한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원효 대사의 일화 중에서는 역시 '해골물 이야기'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던 원효는 어느 날 밤,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바가지에 든 물을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 깨어나 보니 그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깨달음처럼 좋고 나쁨, 기쁨과 슬픔의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진리는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고 보면서도 행동하기 어려운 법. 내 마음인데도, 나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마음에 안정이 필요할 때 탑을 찾곤 한다.
올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온다. 그래도 이 탑들은 늘 그 자리에서 굳건히 방문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방문한다면 이 옹골찬 탑들도 꼭 관람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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