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지만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
사랑을 하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순간은
상대의 감정을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였다.
그는 자주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에 대한 사과를 원했다.
사과를 하면 그는 금방 풀렸고,
“없던 일처럼 넘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게 관계를 빨리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연인이니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니까,
사과하고 다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성숙함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대신 달래달라는 요구였다는 것을.
그는 화가 나면 감정이 커졌고,
그 감정이 풀릴 때까지 상대가 멈춰 서 있기를 바랐다.
“네가 똑똑하니까 뭘 해야 하는지 알 거다”라는 말로
사과를 종용했고,
순간의 대화는 늘 한 방향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의 불안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설명을 했고, 이유를 말했다.
나는 이해가 되어야 납득하는 사람이라고,
서로 설명하고 맞춰가는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어느 순간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고정값이 되어
나를 가두는 말이 되었다.
문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감정을 다루는 책임의 방향이었다.
연인 사이라면
서로의 말로 인해 생긴 감정을 함께 돌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함께’는
한 사람이 감정을 키우고,
다른 한 사람이 그 감정을 감당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느꼈지만,
그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대신 상대가 알아주고, 달래주고, 사과해주길 바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연인이 아니라
그의 감정 관리자처럼 느껴졌다.
이별을 결심하게 만든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 사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불안을
내 온몸으로 막아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를 안아주고 싶었고,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내 감정과 존엄을 계속 접어야 한다면
그건 더 이상 건강한 사랑이 아니었다.
이 이별은
누가 더 옳았는지를 가르는 이별이 아니다.
이별은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감정의 자립 정도가 맞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나는 이제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살아주는 사랑이 아니라,
각자의 감정을 각자가 책임지되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선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직 사랑이 남아 있음에도
이별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킨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