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불안한 사람에게 끌렸을까

사랑은 역할이 아니다

by 리베르따

나는 늘 불안한 사람에게 끌렸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 감정을 스스로 다루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처음엔 그게 사랑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를 만나면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귀여웠다.
가엾었고, 보호해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된 느낌”*을 주었다.




불안한 사람은, 나를 중심에 세워준다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의 중심에 두었다.


하루의 낙이 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고

내가 없으면 불안해했고

나의 반응에 크게 흔들렸다


나는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건 나에게 강한 존재감과 역할감을 주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과
필요하다는 느낌은
종종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왜 그 역할을 받아들였을까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관리해주려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해하려고는 했다.


문제는 그 ‘이해’가
상대의 불안을 정당화하는 단계까지 가버렸다는 것이다.


왜 저렇게 불안한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저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


나는 설명하려 했고, 해석하려 했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공감하려 애썼다.


그 순간부터 관계의 무게는
서서히 나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불안한 사람의 사랑 방식

불안한 사람은 사랑을 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해해줘야 풀려.”
“사과를 받으면 괜찮아져.”


겉으로 보면 솔직함 같지만,
그 말의 끝에는 책임의 이동이 있다.

내 감정은 네가 풀어줘야 하고

네가 적절히 반응하지 않으면

그건 네가 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논리


사랑이 협력이 아니라
조정관리가 되는 순간이다.





나는 왜 이런 사람에게 끌렸을까

이 질문은 결국
‘그 사람들’보다
‘나’를 향한다.


나는 사랑을 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사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조차 삶에 있어서 사랑에 큰 비중을 두지않는 정말 친한 친구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누군가의 불안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정리해주고,
관계를 지켜내는 역할은
나에게 분명한 의미를 줬다.


어쩌면 나는
사랑 안에서만큼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역할이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불안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 아니고,
상대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버텨주는 시험도 아니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각자의 감정은 각자가 책임진다.
그리고 상대는 공감은 해주되,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그걸 깨닫기까지
나는 꽤 많은 사랑을 통과해야 했다.





이제는 다른 기준을 배우는 중이다

이제 나는 묻는다.

이 사람은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있는가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존중할 수 있는가

갈등 앞에서 상대를 설득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하는가


불안한 사람에게 끌렸던 건
내 약점이 아니라
연민과 깊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나 자신에게도 써야 할 때가 왔다.





사랑은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관계여야 한다

나는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나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안을 스스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을.


그게 내가 이별을 통해 배운
가장 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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