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운 좋게 영화 티켓 당첨돼서 상영 전 미리 보게 된 영화.
어떤 내용인지 모른 채로 갔지만 제목으로 지레짐작하길 오월 가정의 달에 걸맞을 가족 영화이지 않을까.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 떠올랐던, 이제는 십여 년 전이 돼버린 그때가.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던 채로 무작정 외국에 살고 싶어 덜컥 도전했었다. 장애인 단체에 소속되어 함께 살아가며 부대꼈던 일 년.
그 전의 나는 장애인이면 무조건 비장애인인 내가 주체가 되어 도움을 주어야 하는 그런 대상으로 이해했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불편한 상대에게 배려해 주는 그런 따뜻함으로.
처음 몇 개월은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나의 도움은 너무 작고, 미약하고, 그렇다고 눈에 띄는 도움을 행하고 있지도 않고. 나의 존재가 오히려 여기서 방해가 되고 있지 않을까 자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선명해졌던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없음을. 나는 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손 하나를 얹어 조금 가려운 부분이 있을 때 긁어주는 그런 역할이었음을.
새파란 수영장에서 첨벙첨벙 대는 소리 속에 나 홀로 서있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귀국하자마자 수영부터 배웠던 이유기도 하고.
장애인을 다루는 영화가 아주 조금 불편한 건 그래서일 수도 있다. 어느 누구 다른 누구보다 월등하고 뛰어난 게 하나 없을 수 있는 중에 짧은 시간 내에 다뤄지는 대상이 조금은 더 측은해 보이고 안타까워 보이기에.
그런 마음이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이런 영화가 아니라면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잊고 살 수도 있다. 우리는 동화 같은 순간을 찾아내고 기억해야 하는 의무를 요구하는 세상에 살아가므로.
하지만 그런 이유로만 영화가 비춰지고 생산된다면, 조금은 서글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형제가 예뻐 보이는 건,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나누는 그 마음이 좋아서일 거다.
만약 줄기세포가 개발되어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약속에 일부러 늦어 뛰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