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타협하지 않는 데서 오는 미덕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란 책이 있다.
짧은 글들이 연속적으로 그리고 비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다만 읽을 때마다 그리고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이 책이 주는 트로피 같은 거랄까.
연애소설인 듯하면서도 권력과 명예와 예술, 정치, 노동자 등 스토리를 읽다 보면 대하소설 못지않은 방대함과 섬세함에 놀란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타협하는지에 대한 신랄함까지도.
프라하는 추해졌어.
라는 테레자의 말이 입가에 맴돈다. 프라하와 서울, 대한민국.
요즘 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부동산, 은행, 주택, 대출, 그 외 늘 어지러운 정치.
나는 낭만주의자인가.
비관주의자인가.
낭만주의자였던가.
비관주의자였던가.
우아하게 늙어가는 건 불가능한 걸까.
우아하다는 말 자체가 이미 모순인 걸까.
아님 모든 사람들이 우아함이란 말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걸까.
아님 애초에 우아하다는 건 그 속에 한없이 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걸까.
오히려 육체는 정직하다.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움을 받는다.
변하는 건 칭송을 받고,
변하지 않는 건 미움을 받는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를 지킵시다.
여기서 품위란 게 결국 우리말의 우아함이 아닌 건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늘 같은 날에 한없이 어울리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