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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카보 Dec 25. 2019

너무 바빠서 운동합니다.

 출근길에 '오늘 퇴근하면 꼭 운동해야지'라고 굳은 결심을 한 날에는 꼭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기던지, 갑작스러운 회식이 생기던지, 혹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운동을 못하게 되던지 해서 결국 운동을 못하게 될 경우가 많다.  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육아생활에 돌입하면, 퇴근 이후나 주말에 개인적인 취미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미얀마에 온 이후 육아에 대한 부담은 앖어졌으나 근무 강도가 높다는 핑계로 저녁에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규칙적으로 저녁시간을 활용하여 뭔가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루에도 수만 보를 걷다 보면 퇴근 후 온몸에 퍼지는 피로로 인해 운동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새벽 시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7시 출근이니, 역으로 계산해서 식사하고, 샤워하고, 운동하려면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양곤은 생각보다 운동 여건이 좋았다. 피트니스 클럽도 여러 곳 있었고, 수영장도 있고, 테니스 코드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기왕 양곤까지 온 거 국내와는 다르게 양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조깅’을 하기로 결정했다. 새벽시간에는 도로위의 차들이 과속하기 때문에 안전한 곳을 찾아봐야 했다. 구글맵 켜놓고 숙소 중심으로 뛸만한 코스를 몇 개 짜 봤다. 그리고 하루에 한 코스씩 뛰면서 어디가 좋을지 결정하기로 했다.


 양곤의 새벽은 다양한 소리 덕에 쉽게 깰 수 있다. 까마귀가 우는 소리, 사원의 큰 앰프에서 나오는 밥회 진행 방송, 개들이 싸우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그래서 새뱍냑이 되면 자연스레 설잠으로 바뀐다. 이른 새벽 양곤의 공기는 그래도 낮에 비하면 은근 시원함이 있다.


이른 새벽 INYA 호수 풍경
줄지어 걷는 스님들과 시주하는 신도들

 선정 한몇 가지 코스를 직접 뛰어보니, 가장 좋은 곳은 양곤 대학교 캠퍼스를 거쳐 인야호수까지 갔다 오는 코스였다. 차량 통행이 제한된 새벽녘의 양곤대학교 캠퍼스 메인 도로는 조깅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또 가끔씩 뛰다나 주변을 돌아보면,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뿜어내는 매력도 있는 묘한 공간이었다. 1878년에 개교했다고 하니 약 140여 년이나 된 곳이고, 우리나라의 대학들처럼 민주항쟁이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생각 덕에 그 묘한 매력이 더했다. 양곤 대학 캠퍼스를 가로질러 길만 한번 건너면 인야호수가 나왔다. 새벽녘 인야호수는 양곤 대학 캠퍼스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수를 따라 걷기도 하고, 체조도 한다. 호수 건너편에서 해가 떠오를 때, 해를 보며 기도하는 양곤 시민들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그들에게도 매일 달리는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이들도 있고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피트니스센터 러닝머신 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이다.


울창한 나무가 많은 양곤 대학교 캠퍼스

 무리해서라도 운동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순수 운동을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달리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뇌에게 주는 휴식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 하루 중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때는 운동 후 돌아와서 샤워하는 시간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서 아무런 생각이 안 나는데, 딱 샤워기 밑에 서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다시 물밀듯이 떠오르는데, 이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너무 바빠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새벽녘 숨이 차도로 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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