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몇 개월이 지나자 집이 애타게 그리운 타이밍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잘 적응하리라 기대했으나, 시간이 점차 지나자 집에 대한 그리움이 크게 자리 잡는다. 말로만 듣던 향수병이라게 이런 것일까? 미얀마에 오기 전 한국에서 함께 일한 동료가 ‘미얀마와 한국이 비행기로 6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매우 가까운 곳이니, 급한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위치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출국과 입국을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관련 비자를 신정하고, 보증서류를 작성하고, 티켓팅 하고 근무를 조정 등의 많은 행정적 노력이 필요하고, 소요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즉 현실적으로 정기 휴가 외에 한국에 가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내면서 한국에 있는 집 생각이 간절해질 때는 종종 있었다. 먼저 몸이 아플 때 정말 집 생각이 간절했다. 미얀마에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명 '물갈이'에 걸렸다. 한국에서 마시던 물과 성분이 다른 물을 마시거나 접촉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 중 하나라고 한다. 식수를 반드시 사 먹으며 조심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음식에 들어가는 물이 다르고, 샤워할 때도 물이 흡수될 수밖에 없다. 복통을 동반한 고열로 온몸에 힘이 빠졌다. 병원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기에 그냥 주말에 하루 진통제를 먹고 좀 쉬니 다행히 회복되었다. 그 후 몇 개월간은 좀 잠잠하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한국에서는 없던 알레르기가 생겼다. 업무뿐 아니라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눈이 가려워 어쩔 수 없이 나름 수소문해서 유명한 미얀마 현지 병원에 갔다. 세 시간여를 기다리고선, 진료 후 안약을 받았는데 한글이 적힌 우리나라 의약품이었다. 참 반가웠다. 안약을 넣고 좀 지내자 눈이 서서히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레 얼굴 곳곳이 붉게 부어올랐고, 며칠이 지나자 온몸으로 증상이 퍼졌다. 그냥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상황이 안 좋아져서 국제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스트레스나 어떤 외부요인에 의한 피부질환으로 보인다며, 스테로이드 계열의 의약품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고 또 바르니 약간 진정되는듯해 보였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병을 얻어 고생하는 이들은 많았다. 더군다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뎅기열에도 많이 걸렸는데, 곁에서 살뜰히 챙겨주는 가족들이 없다 보니 회복 속도가 매우 느렸다.
또 각종 경조사 소식을 접할 때면 한국에 절실히 가고 싶었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무엇보다 장례식에 직접 얼굴을 보고 위로해 주지 못할 때는 그 미안함이 배로 더한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외로움도 크다. 특히 명절에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 함께 못하고, 전화를 걸어 유선상으로 안부를 묻고 인사하고 끝고 난 직후에는 참 낯선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난 뭘 하려고 여기 혼자 이렇게 와 있는 거지?” 그럴 때면 동료들과 멋진 식당에 가거나, 땀을 흠뻑 흘릴만한 운동을 하며 그 낯선 외로움과 조우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 쌓여 결국 하나의 익숙한 감정으로 자리 잡는다.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한 번씩 사람을 크게 뒤흔든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에서 먹는 음식’이 절실히 생각날 때가 있다. 미얀마에서도 한국식당에서 오래 일한 분을 요리사로 채용했기에 삼시세끼를 한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 단기간 여행 시에도 매우 반가운 짜파게티나 신라면은 늘 박스채로 주방에 있었다. 또한 양곤에는 삼겹살, 곱창, 치킨 등 양곤에도 맛있는 한식당들이 많이 있었고, 주로 이곳에서 회식을 하니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한식을 많이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음식도 음식이지만, 음식을 먹었던 공간과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헛헛함으로 남아서 양곤에서 아무리 한식을 먹는다 한들 한국에서의 식사 때 느끼는 만족감을 채워줄 수 없는 것이었다.
미얀마 프로젝트를 마친 이후, 누군가 해외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꼭 가족들과 함께 나가길 권유한다. 바다 건너 이사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함께 지냄으로써 홀로 일할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플 때 곁에서 함께 해 줄 수 있고,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고, 훗날 기억을 떠올려 공감할 수 있는 재료들을 많이 준비 둘 수 있다. 그게 개인이나 가족에게, 그리고 회사에도 나아가 우리 사회에도 훨씬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