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라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
우리 가족은 여행은 좋아한다. 다행히 여행의 취향은 비슷하다. 여러 곳을 바삐 다니기보단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회사에서 비교적 장기간 휴가를 낼 수 있는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갔는데, 그때도 프라하 한 곳에만 머물다 왔고, 이후에 여행을 가서도 지역을 옮기기 보다는 주로 한 곳에서 머물었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하루 이틀 동네를 거닐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지는 그 느낌이 좋은데, 때로는 마치 이곳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그 기분을 느낄수도 있다. 새로운 곳에 머물며 그 환경에 천천히 적응해 가는 것이 우리가 다니는 여행의 매력이다.
머무는 여행의 매력을 충분히 누리고자, 한 때 강원도에 세컨 하우스를 마련해 볼까 생각했었다. 30~40평 대의 오래된 가옥을 매입하고 리모델링 하면 근사한 별장으로 활용 가능해 보였다. 산과 바다가 모두 가까운 강릉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실제 시세도 확인해 보고, 고향이 강릉이라 한달에 한번꼴로 자주 방문하는 회사 동료에게 자문도 구했었다.
- 차장님. 저 요즘 강릉에 구축 사서, 리모델링해서 세컨 하우스로 쓸까 하는데 어떤 가요 ?
- 세컨하우스 ? 잘 생각해봐. 관리 쉽지 않을걸? 특히 그 바닷가 옆은 곰팡이도 잘 생기고. 정원 있으면 풀 감당 못할걸?
- 아 그래요 ?
- 그리고 평창 올림픽 한다고 도로가 좋아져서, 지금 옛날처럼 1억 미만 주택이 없을거야. 1억 넘은면 세금도 가중 되잖아. 한번 알아봐봐. 그렇게 세컨하우스로 쓰다가 매물로 나온것도 많을 거야.
나름 지역주민만 아는 싸고 좋은 땅의 추천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그의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고 그렇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대답이기에 더이상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기로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라반에 대해 접하다 보니 마음이 카라반 쪽으로 기울었다. 세컨하우스가 지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어 보였다. 다소 충동적인 구매였으나, 그전에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좀 편했었던 것 같다. 카라반을 이용해 처음 우리가 머문 곳은 '영월'이었다. 영월에 베이스켐프를 차려 3개월가량 오갔다. 캠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장박'이라고 부른다. 처음 영월 시내를 갔을 때, 높은 산자락에 푹 안겨있는 듯한 시내의 모습이 참 아늑해 보였다.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자연과 잘 어울렸다.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별마로 천문대에 가서 설명을 듣고 난 이후에는 영월의 별들은 뭔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자연 경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열두 살 나이에 한양에서 이곳까지 유배를 떠나와 머물던 단종의 처소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또 이곳에서 만나게 된 이들과 나눈 따뜻한 대화들도 여행의 소득이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장소에서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 경험들이 쌓여 미래의 우리를 만들어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