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마흔을 넘기니, 여러 모임에 멤버가 되었다. 친구들 모임도 있고, 사회생활을 하며 형성된 여러 목적의 모임들도 많다. 이 중에서 아무래도 제일 반가운 모임은 친구들 모임이고, 그중에서 중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 가장 즐겁다. 어릴 적 서로 집에 자주 놀러 다니던 사이답게, 지금도 그때처럼 특별한 놀이거리가 없어도 즐겁다. 게다가 성격들이 크게 모나지 않고, 각자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다. 이제는 모두 자녀 한 둘 있는 아저씨가 되었는데 얼마 전 서로 이런 대화를 했다.
" 근데 우리 다 너무 각자 위치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서 기분 좋다. 회사에는 불만 투성이인 사람들만 잔뜩 있어서 듣는 나까지 맥이 빠지더라고......"
그러자 사람의 뇌에 대해 잠깐 전공한 친구가 답했다.
" 어 그건 우리가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받고 또 부모님들이 우리를 신뢰해 주셔서 그래. 그게 많은 연구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증명됐어.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자란 아이들의 행복감과의 상관관계... 뭐 그런 거..."
" 생각해 보면 내가 뭐 한다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셨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 어 나도. 믿어 주시니 사춘기 때도 엊나가기가 부담스럽더라고"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계속 '신뢰'라는 단어가 머리에 남았다.
' 나는 우리 아이들을 각자 독립된 인격체로 두고, 그들의 판단을 '신뢰'해 주고 있나?'
' 너무 사사건건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했던게 아닌가?'
갑자기 중학교 때가 떠올랐다. 교회에서 소록도로 수련회 가기 전날, 일기 예보에서 그 지역에 많은 비와 강풍이 불 거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 뉴스를 보고 부모님께서 내일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일기예보는 정확도가 더 낮았다.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그간 준비한 것들을 놓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그날 밤에 수련회에 꼭 가야 하는 이유를 장문의 편지로 작성하여 안방 문틈에 끼워 놓고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부모님이 그러셨다.
" 그래 그러면 조심히 잘 다녀와."
실패를 하더라도 본인이 선택권을 쥐고 판단을 해봐야 한다. 그래도 만족도 감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신뢰하며 양육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