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 같은 겁니다. -영화 ‘3일의 휴가’ 중-
유년기 아이들을 둔 가정의 부모들은 보통 회사에서 상당히 바쁘게 보낸다. 서른세네 살에 결혼하여 일 이년 있다가 아이를 낳으면 서른다섯 살 정도가 된다. 사회 초년생으로 발 내디뎠을 때의 순수함과 어리숙함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의 업무를 완전히 파악한 전문가로 거듭난 나이다. 또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러 불합리한 요소들도,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순응할 수 있는 인내력도 형성될 시점이다. 그러면서 부서 내 혹은 회사 내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시점이다. 그렇다 보니, 전 보다 많은 시간을 업무에 투입하게 되고, 근무 시간 외에 저녁이나 주말에도 참석해야 하는 모임도 늘어나게 되는 시점이다. 무슨 일이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면 좋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가정보다는 회사에 올인했다가 수년 후에 후회하는 선배들의 푸념을 많이 들어 봤다.
“넌 꼭 애들이랑 시간 많이 보내라.”
“네?”
“난 아들 어렸을 때, 회사 일한다고 평일에도 늦게 가고, 또 주말에도 출근하면서 그렇게 살다 보니, 애들이 어느새 쑥 커버렸더라고.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서 애들하고 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이제는 서먹하기까지 하네......."
유년기 시절, 가족들과의 추억을 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족 의식 분야의 주요 전문가인 Barbara H. Fiese 박사는 가족 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더 건강하고 스트레스를 잘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들 아이들은 가족에 강한 연결감을 느끼며 이를 통해 안전감과 안정감을 얻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의미 있는 소통과 결속을 위한 문을 열어주어, 공감과 이해를 촉진하여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노후에 두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 위치한 Pacific Neuroscience Institute의 Pacific Brain Health Center의 고령 정신과 전문의인 David Merrill 박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것을 "회상 요법"이라고 부르는데,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공유된 기억을 회상하거나 사랑하거나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의학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전문가들처럼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낌상 가족들과 추억을 쌓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살면서 경험할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에 큰 자산이 되는 것이 가족들과의 추억이라는 사실을 각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을 넘어 실제 실천하는 것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다.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맞춰, 좋은 방법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 가족의 경우는 있어서는 그 방벙으로 찾은 것이 여행이었다. 부부가 기존에 해왔던 것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고 있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어 돌아와야 한다는 관념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많이 간단해졌지만 그전까지 여행은 언제나 시간과 비요이 많이 드는 일생일대의 고역이었다. 영어 'travel'이 '여행'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무렵으로, 고대 프랑스 단어인 'travail'에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단어에는 현대의 우리가 '여행'하면 떠올리는 즐거움과 해방감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 노동과 수고, 고통 같은 의미들이 담겨 있을 뿐이다. 현대 영어에서는 아직도 'travil'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고생, 고역 등이며 'in travail'이라고 하면 '산고로 몸부림치다'같은 의미가 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여행은 고생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추억 쌓기에 좋은 수단이다. 여행을 좋아하던 때에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우연찮게 캠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캠핑은 여행의 여러 방식 중에서도 고된 축에 속한다. 캠핑을 가려면 준비 단계에서부터 수고가 많다. 짐을 쌀 때도 여벌 옷뿐 아니라 음식 재료, 그리고 조리 도구를 포함해 차를 가득 채울 정도의 짐을 꾸려야 한다. 또한 캠핑이 외부에서 지내는 것이 다 보니, 여름에는 더위와 또 겨울에는 추위에 직접 노출이 되는 환경에서 지내며 마주하는 다양한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어느 여행에서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집약적으로 할 수 있고,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큰 추억으로 남는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갔던 곳을 성인이 되어 다시 방문했을 때, 그곳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추억 속 이야기가 풍요로운 장소로 다가온 경험을 해 봤다면, 그 수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주변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부정적인 피드백도 있다.
"지금 먹고 살 기도 바쁜데, 미래의 추억을 위해... 그런다는 건 내게는 사치다..."
"그냥 일상을 지내는 것도 추억이 쌓이지. 오히려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서 추억을 쌓는 건.. 뭔가 좀 인위적인지 않나?"
물론 반드시 캠핑 같은 이벤트를 해야만 가족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바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오히려 더 각자 상황에 맞는 방법에 대한 고민, 또 실천해야 함, 그리고 그 유익함에 대한 당부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