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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카보 Apr 06. 2024

우리 나중에 은퇴하고 시골에 살까?

 가끔 회사 친구들과 20여 년 후 은퇴시점에 우리의 주거 문화에는 어떤 형태일지를 두고 대화할 때가 있다. 건설을 업으로 하여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직업병 마냥 점심 먹으며 가끔 이런 얘길 한다. 그렇다고 전문가들 수준에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서울에 살다가 전원 생활하기 쉽지 않을걸? 우리 부모님만 봐도 나중에 시골 가실 거라고 했는데... 친구들도 서울에 있고, 또 은퇴해도 모임들도 많고......"

"주변에 봐도 지방에서 한 번씩 서울 대형 병원 오시려면 엄청 고생하시더라고... 처음부터 다른 곳에 살았으면 몰라도... 은퇴하고 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아.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율이 높아지는 게 트렌드이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밀집해서 효율과 편리성을 높여놓은 곳이 도시인데... 나이 들어서는 더 편리한 곳에 사는 게 맞지 않나?"

"근데 또 모르잖아, 나중에는 원격진료도 활성화되고 지금 보다 교통수단도 훨씬 좋아질 테니... 굳이 엉덩이에 비싼 돈 잔뜩 깔아 두고 살 필요 없을 수도.... 게다가 수명도 늘어나고, 국민연금은 우리 때는 소진 국면이라고 하니, 도시를 떠나 여유롭게 살 수도 있잖아?"

 

 개인적으로도 전원까지는 아니어도 아파트를 벗어나 주택에서 살아보려 고민한 적이 있다. 2018년도 경, 성북동이나 평창동에 작은 필지에 지어진 규모가 작은 주택을 사서 리모델링하여 살고 싶어서,  2~3년간 해당 지역으로 집과 땅을 보러 다녔었다. 성북동이나 평창동은 매우 조용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추었으나, 청와대가 인근에 있기에 고도제한 등 제한 요소가 있어, 서울 시내에서는 비교적 평당 금액이 저렴한 땅이 많이 있었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막 달아오르던 터라 거래 물건도 많았고, 때마침 신규 새로 신축한 타운하우스가 있어서 방문하여, 결국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어서 주택에 살고 픈 희망은 접게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민했던 이슈였던 만큼, 단번에 마음이 접히진 않아서 5도 2촌(5일은 도시에 2일은 촌에서 지낸다는 신조어)이라는 말처럼, 주말에라도 리프레시할 수 있는 세컨드하우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릉을 중심으로 몇 지역의 괜찮은 매물이 있는지 또 살펴봤다. 강릉을 위주로 본 것은 강릉이 서울에서 교통 접근성이 좋고, 산과 바다가 있는 강원도 전역으로도 움직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바닷가 앞에 나 홀로 주택이 좀 저렴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부동산 사장님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컨드하우스, 즉 자주 오지 못할 거라면 바닷가이나 산속의 집은 며칠만 비워두어도 쉽게 하자가 생기니 그것보다는 교동 같은 강릉 시내에 주택을 마련하고 그래봐야 거기서 20분 내면 강릉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그게 훨씬 좋고, 또 나중에 혹시 매도할 때도 그게 훨씬 수월 하다고 가이드해 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 부동산은 좋은데 저렴한 물건은 없었다. 교동 시내의 주택들은 이미 우리가 가진 예산을 훨씬 초과하였고, 게다가 당시에는 1억 원을 초과하는 2 주택에 대해서는 세금도 강화되는 추세였기에 강원도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으려는 계획도 철회했다. 물론 요즘에는 워케이션도 늘고, 한 달 살기도 많아 공유 세컨드하우스도 등장했으나 당시에는 아직 이런 플랫폼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카라반'이었다. 물론 캠핑의 목적도 컸지만, 우리가 원하는 지역에 카라반을 세워두면 마치 별장처럼 쓸 수도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구매 동기 중 하나였다. 2021년 가을에 카라반을 구입하여, 그 해 겨울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2~3개월 카라반을 세컨드하우스 삼아 지내게 되었다. 당시 카라반 입문을 먼저 한 회사 선배가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너 아직 초보고, 또 겨울에 카라반 달면 눈길 운전도 제한되니, 장박 하는 게 어때? "

"형 장박이 뭐야?"

"한 캠핑장에서 2달 정도 그냥 세워두고 가고 싶은 때 가서 캠핑하는 거지. 장기숙박의 줄임말 정도 되려나?

캠장입장에서는 비수기에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고, 또 캠퍼 입장에서도 겨울에 텐트 치고 또 철수하고 하는 게여간 일이니 좋고. 그리고 눈 와도 관리도 해 주고 좋아..."


 얘길 들어보니 괜찮아 보였다. 아직 카라반 달고 운전하는 것이나 도착 후 세팅하는 것도 아직 익숙지 않으니 한번 해 보기로 하고, 강원도 영월의 한 캠핑장을 장박지로 선택했다. 장박 장소 선택의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비록 서울에서 거리가 좀 있긴 했으나, 자연 풍광이 뛰어나고, 주변 강원도 지역도 둘러보기 편해서 그곳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우선 한 달을 예약하여 시작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여러 장점이 있어서 결국 세 달을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우리 베이스캠프는 영월에서도 판운리라는 산골마을에 위치한 곳이었다. 캠핑장 앞으로는 제법 폭이 넓은 평창강이 잔잔히 흐르고,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 폭이 넓은 강에는 섶다리가 있었다. 섶다리는 통나무, 소나무 가지, 진흙으로 만든 다리로, 강 수위가 낮은 가을철 만들어서 여름철 수위가 올라가면 자연스레 물에 흘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곳의 지명 이름이 '미다리'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집 앞에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들이 가득한 동작대교를 지나 몇 시간 후면 고요한 섶다리 위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매력은 생각보다 컸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기만 해도 리프레시가 자연스럽게 되었다. 비록 온전한 세컨드하우스만큼 단단한 집은 아니지만, 바퀴 달린 집에서만으로도 일상을 떠나 휴식을 취하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가만히 앉아 먼 경치를 바라보거나 또 책을 보면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곳에 가면 티브이도 없고, 휴대전화도 잘 안 들여보게 되니 생각의 집중도가 확실히 올라간다. '빼앗긴 집중력'의 저자인 요한 하리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한 시골마을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집중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가 충분히 공감 가는 것도 이때의 경험에서였다. 게다가 초저녁만 돼도 엄청 어두워지고 밤하늘의 수도 없이 많은 별에 감탄하며, 의자에 앉아 그동안 미뤄왔던 생각을 하기에 매우 유익한 장소였다.


 영월에서 지내는 동안 바퀴 달린 집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마치 영월 군민이 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원도 여러 곳을 가봤지만, 영월 시내의 풍경은 다른 강원도 마을에 비해서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높고 큰 봉래산의 아래 작은 상가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동네의 풍경이 매우 따뜻하게 느껴진다.  


영월 시내에 가서 식당 몇 곳에서 식사도 해 보았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먹은 칼국수를 최고의 칼국수로 기억하고 있다. 된장 육수로 된 칼국수였는데, 구수한 맛도 일품이었지만 크지 않은 식당에서 겨울철 따뜻이 달궈진 온돌 바닥에 앉아서 먹었던 기억이 그곳을 최고의 칼국수 집이라 기억하게 해 준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유명한 칼국수집에 많이 가 보았으나, 아직도 아이들은 영월 M 식당의 칼국수를 최고라 꼽는다. 또 우리 캠핑장 10분 거리에 있는 허름한 묵사발 식당도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특유의 장소가 주는 매력 덕에 우리에게는 또 찾고 싶은 곳이 되었다. 또 청렴포를 가서 열여섯 살로 생을 마감한 조선의 왕-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고씨 동굴에 들어가서 숨어 있던 박쥐를 본 것도, 가까운 정선의 리조트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것도  바퀴 달린 집을 영월에 자리 잡은 덕이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영월에서 보낸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 매우 따뜻해지고 당시 누렸던 여유로움이 온전히 전달된다. 이런 것이 세컨드 하우스의 매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20년 후에 은퇴하고 나면 이렇게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편리함을 누리고 또 전원의 여유도 누리며, 또 계절에 따라 지역도 옮길 수 있는 이 방식, 게다가 그때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을 테니, 5도 2촌이 아닌 4도 3촌도 가능할 것이니 은퇴 후 우리 거처에 현답을 찾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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