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는 교회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자리를 50년 이상 지켜온 덕에 가족단위의 교인이 많은 편이다. 개인적으로도 20여 년간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아부에서 교사를 하다 보니, 여러 가정의 아이들, 부모님들 그리고 조부모님들까지 카테고리화해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처음 교사와 제자로 만났던 아이들이 이제는 성년이 되어 결혼도 하고 또 아이를 낳기도 했으니 그들의 어린 시절과 새로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자녀 성향은 상당 부분은 부모를 따라간다. 좋은 태도나 성향도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대화도 쉽게 하게 된다.
"저 아이는 어린데도 어떻게 저렇게 점잖을 수 있죠?"
"엄마 아빠가 다 저렇잖아요. 그런 집에서 자라는데 안 그렇기가 더 어렵겠죠."
"하하 그건 그렇겠네요"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매우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가정에서 겪는 자녀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금쪽이'라는 가칭을 사용한 아이의 행동을 보고, 그 심리적 원인이 무엇인지 전문가가 나와서 진단하고 치료 방법도 제시해 준다. 그런데 이때 이 심리적 원인은 대부분 그 부모에게 기인한다. 부모의 잘못된 생활태도나 양육 방식,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자녀 문제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한번 보면 쉽사리 자리를 뜨거나 채널을 못 바꾸는 이유는 바로 거기서 나오는 부모의 문제점들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스스로 반성과 또 안위의 중간쯤 감정을 가지고 시청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해 보면, 또 문제 역시도 조부모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옛적 조상들이 혼인 시 배우자의 가풍을 중시 여겼는지는 도 모르겠지만,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그 가정만의 특성을 바라보면서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지닌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가정은 작은 사회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되물려온 DNA와 또 그 가정 고유의 교육을 통해 형성해 온 '가풍'이 모여 우리 사회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가정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 더 이상은 루틴 한 일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여러 사유로 인해 해체되는 가족이 늘어났다. 경제적 이유, 성격이나 성향의 차이 등 사유는 여러 가지인데, 이혼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한국의 이혼율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한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을 반증하는 거예요." 이혼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고, 가까운 법조인이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던진 말이다. 처음에는 이혼이라는 것이 고소득자들이 깨닫게 되는 새로운 삶의 가치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문제제기 하고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 들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하고, 자녀들 역시도 과거에 비해 학습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보통 모두 바쁘다. 예전 같으면 서로 바쁜 가족 구성원을 전업주부가 중심이 되어 돌보는 시스템이었으나, 이제는 전업 주부가 없이니 중심이 사라지고,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삶을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형성된 각자의 삶의 영역이 상호 큰 피해가 없다면 그냥 사는 거고, 만일 그 사이에 충돌이 발생된다면 갈라서는 그런 상황처럼 보였다. 그러나 초기에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의 목적도 대부분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텐데,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냥 가정 구성원 각자가 제 역할을 하며 지내는 것 외에도, 가정을 단단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여러 수고가 필요하다. 그런 수고스러움이 개인의 행복을 크게 훼손시키는 상황이라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누구나 역사의 한 부분을 감당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게 되는 것이니, 그런 측면에서 역할을 가늠해 보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정답이 있기보다는 최선책을 찾아 시행하고 또 환경 변화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계속 개선하려는 노력도 뒤따라야한다. 우리 가정에게는 지금 그 수단이 캠핑이었다. 그래서 그간 써온 글들을 통해 그 얘기들을 공유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