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아이 임정은의 일대기
나는 말이 많고 활발하고 사랑받은 아이였다. “뭣이 중헌디?”의 그 무서운 곡성이 아니라 세계 장미축제와 심청이의 고장으로 유명한 한적한 시골이었다. 부모님은 딸바보였고 어려서부터 공부 압박 없이 활발하게 산과 들을 거닐며 자랐다. 초등학교는 전교생 40명 남짓의 매우 작은 학교였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겨주는 조그마한 초등학교, 엄마, 아빠, 오빠, 나, 여동생 5가족 모두가 고달초등학교 동문이다. 전교생이 적었기 때문에 나는 6년간 1반 9번이었다. 9명의 학생과 6년간 동고동락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부모님은 농축산업을 하시느라 주말할 것 없이 바빴지만 놀아줄 때는 잘 놀아줬고 6살 연상의 친오빠와 친오빠 친구들이 우리의 목말을 태워주며 놀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는 쪽이었고 여동생이랑 욕을 하며 치고받고 싸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다. 딸바보 부모님 덕분에 인정 많고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시골 학교였지만 그래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은 특별한 사교육은 하지 않으셨고 뛰어놀며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놀아라 방임주의였다. 나는 공부를 하는 게 재미가 있었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승부욕이 강해 1등을 하고 인정받는 성취감을 점점 중요하게 생각해나갔다.어른들은 말했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니까 나중에 TV에 나오는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 그 말이 무의식중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언론인이 되기 위해 험난한 공부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지금은 신문방송학 전공을 마치고 졸업을 앞두는 25살의 어른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