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모양의 식자재로 만드는 파스타
하늘 아래 같은 음식은 없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기호와 취향, 오랫동안 누적된 습관을 반영한다. 죽어도 먹지 않는 음식이 있고, 죽어라 찾아 먹는 음식이 있다. 음식은 개인 선택을 존중받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다.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되고 먹어도 맛이 없으면 뱉을 수 있다. 하루에 세 번, 또는 두 번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에 맡겨진 영역이 음식 말고 무엇이 있을까?
여러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때 메뉴를 먼저 선택하지 않는 것은 ‘배려’이고
식당을 고를 권리를 상대방에게 넘겨주는 것은 ‘애정’이다
20년 전 베트남 쌀국수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고수향이 벤 국물을 찬양하는 쪽과 극혐 하는 쪽으로 나뉜 기억이 난다. 작년 온라인에서 유행이었던 민초파와 반민초파. 오이향을 싫어하는 사람, 가지의 물컹거림을 먹지 않는 사람. 치킨 한 마리를 시키는 사람과 닭봉, 닭다리만 먹는 사람.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테. 마라탕을 사 먹는 사람과 마라탕 집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과 못 먹는 사람. 뜨거운 피자보다 약간 식은 딱딱한 피자를 선호하는 사람. 국밥에 밥을 말아먹는 사람과 따로 먹는 사람. 같은 식당 같은 메뉴를 주문해도 먹는 방법과 간을 맞추는 방식, 먹는 순서와 어떤 반찬을 함께 먹느냐에 따라 결국 각자가 자기만의 음식을 먹게 된다.
어찌 보면 한 테이블에 앉은 우리 중,
누구도 절대적으로 같은 음식을 먹고 있지 않다.
새로운 음식은 어려워
음식은 개인이 속한 문화와 취향을 반영하는 것만큼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맡는 향과 모양은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참새구이와 개구리볶음, 달팽이 요리. 처음 맡아보는 향신료 향. 모두 무섭고 어려운 존재다.
처음 보는 식자재를 먹고 즐기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백종원은 싫어하던 고수를 먹기 위해 1년간 반복적으로 먹었다고 한다. 평양냉면 역시 ‘즐기는’ 단계까지 올라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음식은 단번에 모든 맛을 알려주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식당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만 숨겨진 깊고 오묘한 맛을 드러낸다.
낯선 음식을 먹는 두 가지 방법
농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마르쉐 장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직접 키운 신선한 야채와 이색적인 과일을 판다. 쿠카멜론과 하늘마라는 채소를 만났다. 모양은 기괴한데 이름은 사랑스럽다.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정보를 찾아본다. 식자재가 어느 과에 속하며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낯선 두려움이 조금 사라진다.
첫 번째, 좋아하는 재료와 섞어 먹기
쿠카멜론 Cucamelon은 오이와 멜론의 교배종이다. 오이를 뜻하는 cucumber와 멜론 melon이 합쳐진 이름이다. 표면 세로 줄무늬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피클로 담아 먹는다고 한다.
쿠카멜론을 먹어보았다. 멜론향 2%와 오이 98% 맛이다. 오이에 가깝다. 심지어 과육이 거의 없으며 씨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달콤한 멜론을 기대했다. 이름에 속았다. 시큼하고 향긋한 작은 오이를 먹기 위해 냉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파스타면은 쿠카멜론 크기와 비슷한 둥근 면을 사용했다. 베네테도 카발리에리 디스키 볼란티라는 제품이다. 이 파스타면은 이탈리아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암동 알리멘따리 꼰떼에서 구입했다. 가격은 약 16,000원이다. 베네테토 까발리에리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파스타 브랜드로 1918년 창업했다. 100년 넘은 브랜드다. 듀럼밀 세몰리나 100%를 사용하고 저온으로 40시간 반죽을 건조한다. 파스타 표면이 꺼끌꺼끌하여 소스가 잘 묻고 탄력이 높다고 한다. 디스크 볼라티는 파스타 모양 이름이다. 둥글게 말린 모양이 마치 암모니아 화석을 닮았다.
파스타는 15분 삶았다. 삶은 면에 모차렐라 치즈, 방울토마토, 쿠카멜론 등 준비한 야채를 넣고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 레몬주스를 뿌려 완성했다.
면은 쫄깃쫄깃하고 치즈는 고소하다. 상큼한 방울토마토와 시큼한 쿠카멜론. 한 수저에 여러 재료를 듬뿍 담아 먹었다. 익숙한 재료 80%에 낯선 재료 20% 정도 비율이면 먹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쿠카멜론이 입 안에서 사각사각 '오이'씨와 함께 터진다. 역시 어색한 맛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올리브오일 덕분에 끝까지 먹을 수 있다. 쿠카멜론은 다른 야채와 마찬가지로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다고 한다. 남은 파스타는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샐러드처럼 즐길 수 있다.
두 번째, 속도전
낯선 음식을 먹는 두 번째 방법은 속도전이다. 최대한 빠르게 섭취한다. 영지버섯과 암석을 닮은 하늘마는 넝쿨을 타고 하늘에서 열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마'는 땅속에서 자란다. 하늘마는 반대로 하늘에서 자란다. 마와 같이 호르몬을 촉진하는 아르기닌 성분과 위를 보호하고 소화운동을 촉진하는 뮤신 성분을 가지고 있다.
하늘마는 믹서기에 갈아 단숨에 마시기로 했다. 껍질을 감자칼로 벗겼다. 땅속에서 자라는 원통모양 '마'와는 달리 굴곡이 많고 울퉁불퉁하여 껍질을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 껍질을 벗기니 녹색빛이 나는 과육이 보인다. 공기와 접촉하니 녹색이 다시 주황색으로 바뀐다. 모양처럼 어렵고 이상한 야채다.
하늘마에 토마토와 꿀을 추가하여 믹서기에 갈았다. 점액질이 나와 끈적끈적하다.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일 만큼 '마'는 영양성분이 풍부하다. 그리고 한 잔 주스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과 시간이 적지 않다. 반드시 먹어야 한다. 쿠카멜론 파스타를 다 먹은 후 단숨에 마셨다. 점액절 덕분에 목 넘김 4~5번으로 한 컵이 사라졌다. 역시 어려운 음식은 빨리 먹는 게 최고다. 맛을 채 느끼기 전 청개구같은 하늘마가 사라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머리말에 적혀 유명해진 조선 시대 글귀가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낯선 음식은 반대다. 먼저 먹어본다. 먹어보면 점점 맛을 알게 되고, 맛을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음식은 전과 같이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고 원하는' 애정의 대상이자 '추억'의 상징이 된다.
멜론맛이 아닌 쿠카멜론, 하늘처럼 투명하지 않은 하늘마와의 첫 만남. 5번, 7번... 10번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해야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좋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마르쉐 장터에 가면 용기를 내서 쿠카멜론을 다시 사 올 예정이다. 언젠가 이것을 좋아하게 되면 이번에 발견하지 못한 '멜론'맛을 나에게 슬며시 보여줄지 모른다.
하늘마, 쿠카멜론 요리는 아래 동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https://youtu.be/ceO1tA_fpb4?si=rt-jm4wGp9s6sd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