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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white Aug 16. 2024

살기 좋은 동네의 조건

건강, 돈, 배움과 연결된 환경의 중요성

집이 의식이라면 동네는 무의식이다. 집이 몸이라면 동네는 옷이다. 동네가 단팥빵의 반죽이라면 집은 팥앙금이다. 집과 동네, 주거와 환경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집을 고르기 전에 어떤 동네에 살 것인지를 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좋은 동네라고 하면 의례 다음을 기대할 것이다. 공기 좋고 편의시설이 밀집해 있으며, 대중교통이 편리하고 문화시설, 적당히 맛집도 즐비하고 운치도 있는 곳 말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를 다 갖춘 동네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왜냐하면 부동산 가격과 지형, 인구 밀도에 따라 동네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이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숲 가까이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인구 밀도가 낮은 동네를 선호한다면 안타깝게도 역세권과 멀어진다.(부암동) 반대로 교통편리성을 추구한다면 동네 운치를 포기하고 혼잡함을 감수해야 한다.(신도림, 용산, 서울역, 고속터미널) 맛집과 카페가 밀집한 동네에서는 대형 문화시설을 찾기 어렵다. (홍대, 강남역) 카페와 맛집은 유동인구가 많은(부동산 값이 높음) 곳에 주로 문을 열기 때문에 갤러리, 서점, 체육시설 이 필요한 부동산 조건(저렴한 임대료와 넓은 부지)과 맞지 않다.그래서 집을 사기 전, 어느 동네에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반드시 가져가고 싶은 요소를 정해야 한다.


동네가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세 가지다. 건강, 돈(주거 및 생활비), 배움.

어떤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더 건강해질 수도, 돈을 모을 수도 있다. 환경에 따라 배움의 영역도 달라진다. 위 세 가지 요소 중 지금 나의 상황에서 3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꼽아 동네를 고르는 기준으로 삼으면 좋다. 나의 경우는 처음 직장 생활할 때 역세권 근처에 살면서 돈을 잃고 대신 유행과 트렌드를 배웠다. 30대 중반에는 건강과 휴식이 중요해 공기 좋고 산책하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지금까지 이사 경험을 통해 배운 동네와 돈, 건강, 배움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다.


1. 건강, 운동이 중요하다면 역세권에서 벗어난 동네를 고른다. 매일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2.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전통시장 근처를 추천한다.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에 비해 30에서 50% 저렴하게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된다. 단, 시장이 발달한 동네일수록 교통체증과 혼잡함은 증가한다.
3.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것이 1순위라면 역세권을 선택한다. 그러나 역세권에서 도보 20분 멀어지면 같은 금액에서 원룸이 투룸으로 바뀐다.
4. 미술관, 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이 중요하다면 산 주변으로 가야 한다. 미술관, 도서관이 커질수록 서울 외곽이나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5. 최신 트렌드를 매일 느끼며 카페와 빵집, 팝업 스토어 가까이 살고 싶다면 성수, 홍대, 이태원, 경복궁, 압구정 상권 주변에 사는 것을 추천한다. 단점은 생활비에서 월세와 식비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것이다.
동네가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세 가지 요소


요역하자면 역에서 멀어질수록 돈과 건강을 얻을 것이요 역 가까이 살수록 세상 변화를 사장 빠르게 체득할 것이다.


이번 이사에서는 ‘도서관’을 1순위로 꼽았다. 도서관은 공짜로 혼자 놀기에 좋은 곳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잡지와 단행본 도서를 무료로 볼 수 있어 책 구매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책 구매 빈도를 줄이면 작은 집에 책을 쌓아놓지 않아도 된다. 서울과 경기도 안에 위치한 대형 도서관을 검색했다. 의정부 미술 도서관, 여의도 국립중앙도서관, 서초구립 양재도서관, 안국역 정독 도서관, 남산 도서관. 파주 중앙도서관 등이 후보였다.


두 번째 조건은 골목이 많고 오래된 가게가 많은 동네였다. 도로 폭이 넓고 반듯하게 계획된 동네는 차가 빨리 달린다. 골목과 언덕, 작은 길로 이루어진 동네는 사람도, 차도 천천히 달린다. 동네 풍경이 천천히 흐른다.


현장 답사와 네이버 거리뷰, 부동산 앱을 보면서 후보를 좁혀갔고 마침내 예산 안에서 도서관 도보 5분 거리에 오래된 빌라를 찾을 수 있었다. ‘도서관 옆집’을 리서치한 지 3개월 만이다. 부동산에 연락하고 1분 정도 짧게 집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집을 계약했다. 나의 의지보다 주변 환경의 힘을 더 믿는 터라 비뚤어진 천장과 눅눅한 벽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집이야 고쳐 살면 되지, 그런데 동네는 내가 고칠 수 없잖아


어떤 동네의 단점이 누군가에는 장점이 될 수 있고, 위치적 장점이 어떤 측면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하며 각각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최고의 동네’는 다르다.


집을 마련하기 전에 자신에게 맞는 동네를 찾는 일이 먼저다. 평소에 살고 싶은 동네에 들려 커피도 마시고 걷고 저녁도 먹어보자. 여러 곳을 방문하다 보면  낯선 동네에서 익숙함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 온다. 마치 단팥빵의 앙금이 되어 폭 안기고 싶은, 여기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동네가 반죽이라면 집은 앙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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