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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white Aug 21. 2024

집 어디까지 고칠 것인가

올수리 vs 스타일링 vs 인테리어 디자인

평수 대비 저렴. 3천에 80, 올수리, 햇빛 잘 듦


부동산에서 집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 단어는 ‘올수리’다. 이 단어가 붙은 집은 벽지, 장판을 새로 교체해 놨음을 뜻한다. 집을 보지 않아도 쉽게 공간 분위기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25년 된 오래된 빌라를 샀다. 벽지, 천장은 3년 전 교체한 듯 보였고 베란다 쪽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화장실은 한 번도 수리하지 않은 듯 보였다. 지금은 찾기 어려운 붉은 패턴 타일, 녹슨 배관, 누렇게 변한 샤워 호스가 눈에 띄었다. 따뜻한 물이 나오고 전기와 인터넷이 들어온다면 살지 못할 집은 없다. 적응의 문제이지 생존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냥 살자니 뭔가 아쉽다. 뭐라도 고치고 꾸며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생애 최초 주택이니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집처럼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같다.


집 고치기 세 가지 영역

집을 꾸미고 바꾸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수리(repair)다.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이란 뜻이다. 수리를 선택한다면 전기, 보일러, 수도에 고장 난 곳이 없는지를 점검하고 벽지와 장판을 교체한다. 하얀색 벽지와 갈색 장판을 고르면 전체 수리비용은 200만 원 정도 들 것이다. 기간은 3일이면 충분하다. 저렴한 가격, 짧은 시간 안에 가장 손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내 방 분위기가 옆집, 옆옆집과 차이가 없고 기능적으로 개선된 부분은 없다는 것이다.

수리를 하면 개성을 찾기 어렵지만, 가장 저렴하고 빠른 시간 내에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인테리어 디자인(Interior design)이다. 이 단어는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실내 장식’이란 뜻이다. 처음에는 공간 꾸밈에 가까운 영역이었는데 20세기 들어와 ‘생활방식, 개인의 능력, 개인의 이상’에 부합하도록 설계까지 포함되었다. 수리와의 차이점은 전체 공정이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 공간 구조와 기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점이다. 삶의 방식과 취향에 따라 구획을 나누고 벽을 부수고 단을 높이고 창을 넓힐 수 있다. 벽과 바닥, 바람구멍이 디자이너가 그린 도면에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전문가가 한 명 이상 참여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크게 늘고, 공사 기간 역시 비례적으로 길어진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통해서 공간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마지막은 스타일링(styling)이다. 기능의 핵심, 뼈대는 건들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교체하거나 뭔가를 추가하여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방법이다. 흔히 가구, 패브릭(거튼, 침구류, 카페드), 소품(액자, 화병, 기타 오브제 등등)을 선호하는 분위기에 맞춰 조화롭게 구성함을 뜻한다. 이 분야에 전문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집의 경우 전문가 없이 집주인이 시간을 들여 원하는 분위기로 연출할 수 있다. 심지어 집 꾸미기 예산이 없을 경우 가진 물건만으로 집을 꾸밀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가구나 소품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감도 높은 공간 연출이 쉽지 않다. 2만 원짜리 플라스틱 스툴과 40만 원짜리 원목 아르텍 스툴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생긴다. 성공하는 스타일링 핵심에는 색의 조화도 있지만, 각 사물이 가진 고유한 형태와 질감도 포함된다.

오래 살지 않을 예정이라면 가구와 패브릭에 집중한다. 떼어갈 수 있다.


집 고치기 범위를 선택하는 기준

다시 낡고 오래된 집으로 돌아가보자. 수리,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일링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제일 중요한 요소는 공사기간, 예산이다. 즉시 입주해서 살아야 한다면 수리나 스타일링으로 만족해야 하고, 3개월 정도 집 고치는데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인테리어 디자인도 가능하다.  

또 다른 기준으로는 자산 가치와 이동성에 초점을 맞춰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사가 잦다면 가구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은 가구는 분위기를 좌우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당근에 팔기도 좋다. 할인된 가격으로 팔 수도 있고 한정판 제품이라면 산 가격 이상으로 재판매가 가능하다. 반면 같은 돈으로 인테리어를 한다면 회수할 방법이 없다. 타일과 원목 마루를 면에 부착하는 순간 재료 가치는 0원이 된다. 떼어갈 수 없으니 철거를 해야 하고, 철거하는데 돈이 또 든다.

다른 관점에서 집의 목적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집이 홈오피스이자, 작업실, 촬영공간이라면 스타일링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커튼이 흩날리고 빈티지 시계가 똑딱거리며, 모카포트에서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보글보글, 거실에는 페이즐 무늬 카펫이 깔려 있는 장면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기 위해 집을 샀다. 반려견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집, 자주 하늘을 볼 수 있는 집, 주방이 큰 집, 나만의 서재를 만들 수 있는 집. 언젠가 독서모임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차를 마실 수 있는 집. 그림을 여기저기 대충 걸어도 어울리는 집.  


공간에 바라는 것이 많으니 수리나 스타일링으로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충족할 수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낡은 집을 샀다. 남은 돈을 계산해 봤다. 2천만 원. 몇 군데 인테리어 견적을 받아보니 내가 가진 돈으로는 거실밖에 고칠 수 없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생각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어쩔 수 없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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