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white Aug 02. 2024

살기 좋은 동네와 놀고 싶은 동네는 다르다

동네, 어떻게 고를 것인가(1편)


5번 이사를 통해 알게 된 집에 관한 세 가지 착각이 있다. 처음 자취할 때는 ‘핫플’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카페들이 즐비하고 점심에는 쌀국수를 먹으며 오후에는 치맥을 즐길 수 있는 동네말이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삶은 삶이고 노는 건 노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한 동네, 한 집에 동시에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번째 착각은 유명한 맛집 옆에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거주기간:2021,2022년 / 보증금 2천만 원, 월세 80 / 10평/ 다세대주택 2층)

홍대에 아주 유명한 일본 라면집이 있다. 여기는 저녁에 가면 어김없이 대기를 해야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라면집을 좋아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종종 방문했다.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고소 하면서 깔끔한 국물, 생면을 사용해 식감이 살아있는 라면이었다.  

나의 4번째 자취집은 라면집 뒤편 건물이었다. 처음 집을 보았을 때 ‘이 집이구나’라고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좋아하는 카페와 음식점이 많다는 이유로 계약을 했다.


자, 그러면 나는 이 집에 사는 2년 동안 라면집을 얼마나 자주 갔을까?


정답은 두 번이다. 방문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사 전에는 라면을 먹기 위해 택시를 타기도 했고, 30분 이상 줄을 서서 먹기도 했다. 라면집 근처로 이사 오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라면을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맛집은 맛집을 향해 가는 시간과 기대감이 맛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희소성과 그것에 대한 나의 투자가(시간과 돈)가 맛있는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비법이다. 


어린 왕자 소설에 나오는 ‘기다림’에 관한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이를테면 당신이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마음이 즐거워질 거예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복한 기분이 점점 더해지죠. 4시가 되면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마침내 당신을 보면 행복감에 젖은 얼굴을 보게 될 거예요!"


가정해 본다. 만약 내가 런던베이글 옆으로 이사를 한다면, 지금처럼 줄 서서 먹을 일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그냥 다른 빵집에서 베이글 3천 원짜리 사 먹을까?’라고 생각하며 런던베이글 지나 곧장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런던베이글 빵을 먹는다고 해도 예전처럼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쉽게, 빠르게 구입할 수 있는 것에는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이다. 


두 번째 착각은 역세권이다. 

(거주기간:2018년 / 보증금 천만 원 / 월세 90만 원 / 5평, 복층구조 / 신축 오피스텔)

"다음 역은 우리집입니다."

비와 눈을 걱정하지 않고 바로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 대중교통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닿는 효율성. 역세권에 살면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낄 수 있다. 


내가 두 번째로 빌린 집은 홍대역에서 300미터, 버스 정류장과는 17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창문을 열면 홍대 메인 도로와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외출 준비를 하고 5분 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획기적으로 줄어든 출퇴근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이 만족감도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월세 90만 원이면 꽤 큰돈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매달 내면서도 창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문을 열면 6차선 도로에 정차된 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먼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새벽에는 사이렌 소리와 경찰 출동하는 소리,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잠을 깨웠다. 창문을 열지 못해 바람을 쐬고 싶어 집 밖을 나오면 많은 인파로 여유를 갖고 걷기 어려웠다. 도시 한 복판에 갇힌 느낌이었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어 ‘여유’ 시간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런데 마음은 ‘여유’를 갖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해가 지면 홍익대학교 운동장에 갔다. 나무 사이 벤치에 앉아 있거나 운동장을 달렸다. 역세권에 살면서 역과 최대한 역과 떨어진 곳을 찾아다녔고, 숲세권을 향해 언덕을 올랐다. 부동산 계약 기간이 빨리 끝나길 기도하면서 말이다. 


세 번째 착각은 높은 층에 사는 것이다. 

(거주기간: 2020년 / 보증금 이천 만원/ 월세 125만 원 /10평/ 11층 )

홍대역 오피스텔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집을 구했다. 이전 오피스텔과 정반대로 창문이 많고 고요한 고층 오피스텔을 선택했다. 집을 처음 보러 간 날, 방 안으로 하늘이 들어온 것 같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였다. 고층이어서 도로 소음도 잘 들리지 않았다. 

도시 야경과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배경으로 홈오피스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형 책상과 의자를 샀다. 월세가 비쌌지만 영감을 줄 것 같은 하늘을 계속 볼 수 있다면 괜찮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 알았다. 하늘만 보는 것은 몹시 지루한 일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도시 불빛을 볼 수 있었지만 감동을 느끼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주말에는 집에 있지 않고 스타벅스를 더 자주 갔다. 장마 기간에 하늘은 대부분 짙은 회색이었고 눈이 오면 옅은 회색으로 변했다. 이때 나의 하늘색은 회색 그러데이션 칼라 차트로 채워지고 있었다.

자연은 소리와 함께 온다. 

비가 오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소리 때문이다. 빗방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비가 오는 것을 알게 한다. 허공에서 스쳐가는 물방울과 눈은 아무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택배차바퀴 소리, 물방울이 땅에 닿는 소리, 산책하는 강아지 소리, 가을을 알리는 매미 소리, 단풍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이런 소리들이 그리웠다. 귀가 땅에 가까워야 고요함이 적막함으로 바뀌지 않고 일상 감각이 풍요로워진다. 


나는 땅과 가장 가까운 한옥집으로 이사했다. 


1층과 11층, 5평 원룸과 12평 투룸, 빌라와 오피스텔, 역세권 비역세권 등 5번의 이사 경험을 가지고 나에게 맞는 살기 좋은 동네 조건을 꼽아보았다. 그리고 한옥집을 마지막으로 집을 구매하기로 했다. 조건에 맞는 동네는 서울에 세 군데였다. 네이버 지도와 부동산 앱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살기 좋은 동네로 어떤 조건을 꼽았을까?  

(2편으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은 대출을 일으키고 다름은 불안을 낳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