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뉴스의 혁신> by 루시 큉
‘저항의 신문, 세상에 대한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아웃사이더 브랜드’라는 지향점은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게 핵심은 아닌 것 같고.. 가디언은 디지털 시대에서 전통미디어가 밟을 수 있는 가장 정석에 가까운(스무스한?)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특징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익숙할 수도 있다. 가디언과 유사한 시도를 계속 하고 있는 한국의 언론사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사이에 놓인 큰 차이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바로 ‘글로벌’이다. 가디언의 전략이 상당 부분 가능했던 것은 영어권 매체로서 글로벌 이용자를 기반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언의 방식이 쉬운 길로 보여 함부로 들어섰다가는 정신차렸을 때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가거나, 가시밭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콧트러스트’라는 지배구조(?)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는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혁신 보고서로 대표되는 뉴욕타임스의 혁신 타령(긍정적인 의미에서)에는 단 하나 확실한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의 저널리즘은 최고다”라는 자신감. 이것이 없었다면 혁신 보고서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의 변화는 더 놀랍다. 요리배달 스타트업과 함께 식재료 배달까지 진출했다. 정확한 출처와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뉴욕타임스의 정체성을 더이상 언론에 두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봤던 기억이 난다. 미디어 업계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아니면 나의 고정관념에서 기인한 우려에 불과한 것일까..머리가 복잡해진다.
“우리는 쿼츠를 애틀랜틱(The Atlantic)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임무를 지니면서 실리콘밸리의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이라 가정했다, […] 본질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공격적으로 우리 자신을 잠식하는 것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이런 각오가 필요하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또 하나 옵세션(obsession). 나는 앞으로 점점 더 매체 간 역할 분화가 심화될거라 본다. 이제 속보와 스트레이트는 통신사가 전담하고 롱폼과 깊이 있는 해설기사, 탐사보도만 전담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다. 그리고 거대 언론사 체제의 주변부에서 장기간 텀을 두지만 한번의 매우 파괴적인 기사를 내는, 옵세션을 가진 개인 저널리스트들이 각광받을 것이다. 다양성과 레드팀의 부재, 긴 텀으로 인한 수익성 문제를 겪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저널리스트들의 소규모 연합체가 결성되고, 유료화 모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점점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는 매우 낙관적인 예상을 해본다).
버즈피드는 기술과 데이터 기업이 미디어 업계에서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비선형 미디어 환경에서 버즈피드의 퍼널 전략을 분석한 강정수 박사님의 글을 보게 되면 버즈피드가 얼마나 얄밉게도 똑똑한지 알 수 있다. 분자요리를 보는 것 같다.
바이스는 단순히 소재의 차별성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영상 자체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다.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다름을 구현하는 방식 역시 이용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유명한 발언이 되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하고, TV나 광고, 영화 쪽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을 채용해야 하며 학교애서 갓 졸업한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채용 철학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이고,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지만 10대와 20대초반 친구들은 이미 나와도 미디어 문법 자체가 다름을 느낀다. 그냥 취향 차이가 아니라 문법 자체가 다르다. 이것은 공부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쥐픽쳐스나 비트니스, 필리즘 같은 움직임을 결코 폄하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오늘날 미디어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축구선수 얘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어린 친구 하나가 축구에 관심 많아서 축구를 열정적 연습했습니다. 드리블 연습, 패스 연습, 팀워크 연습 등을 통해 땀 흘리며 성장했습니다. 모든 이가 꿈꾸는, 실제 경기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관중 함성 속에서 축구장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웬걸, 낯선 광경 펼쳐졌습니다. 희망을 꿈꿔왔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낮선 경기장이 펼쳐진 겁니다.(그는 여기서 야구장 사진을 띄웠다.) 누군가 여기는 야구장이라 한 겁니다. 이 선수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야구의 룰도 모르고 맞딱뜨린 야구장의 모습에 그가 느낀 당혹감이나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게임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식에 한 연설 중에 인상적이었던 대목이다.
미디어 환경도 같다. 위의 비유에서는 그래도 야구라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게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해리포터의 퀴디치 같은 게임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게임인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조차 없어서 정해진 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방식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각자의 방식이 있고 그것을 무기로 저마다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2014년에 쓰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이크미디어, 리파이너리29, 더 스킴 등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또 위 5개 플레이어가 이제 장밋빛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원을 감축하고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영장 표면 위에서는 편해보이지만 물 속에서는 치열하게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7114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