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변신’을 봤습니다. 최근 본 한국 영화는 늘 실패의 연속이라... 변신도 보지 않으려 했지만 지인들의 관심으로 결국 보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예고편을 흥미롭게 봤기에 UBD 같은 영화는 아니겠지 싶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역시 실패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느끼겠지만 CG가 굉장히 엉성합니다. 악령을 퇴치할 때 입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는 장면에 어울리지 않아요. 저예산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CG 느낌이에요. 그리고 악령이 씐 분장은 너무나도 조잡했습니다. 악령이 들어가면 턱부터 주름(?)이 생기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그냥 분장을 했다는 정도의 느낌... 무섭다거나 악령의 특징을 잘 살렸다거나 하는 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어색합니다. 처음 엑소시즘을 하는 장면에서 아이의 연기부터 시작해 영화 내내 배우들의 연기가 오그라듭니다. 분명 연기를 잘하는 분들인데, 어색하다는 건 연기 지도가 잘못되었다거나 한 것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성동일 씨의 연기는 그중에서도 괜찮은 편이었죠.
아무런 정보 없이 봤던 영화의 오프닝은 제가 생각하던 영화의 주제와 달랐습니다. 엑소시즘 영화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엑소시즘 의식을 시작부터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줄거리 역시 엑소시즘과 관련이 깊은데, 악령 들린 소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신부(배성우 분)의 갈등과 악령의 저주로 인해 신부의 형 강구(성동일 분)의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주된 스토리입니다.
‘변신’에서 크게 두 가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같은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 ‘검은 사제들’ 그리고 ‘알 포인트’입니다. 두 가지를 섞어 놓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큰 줄기는 검은 사제들을 따라가면서 갈등은 알 포인트를 떠오르게 합니다. 엑소시즘 안에 알 포인트와 같이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고 있죠.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악령의 ‘변신’ 능력입니다. 극 중 악령은 사탄이라고 불리며 특기는 분란,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부의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저주하는 악령이 가족들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갈등을 만들죠.
이 과정이 좀 더 다뤄지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예고편도 주로 다루는 장면은 강구 가족의 갈등 장면이기도 했고, 악령의 변신 능력이 가장 부각되기도 했으니까요. 즉, 가족이 서로를 믿을 수 없고 미워하게 되는 등의 감정을 더 다뤘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악령의 변신 능력을 강조할 수도 있었겠죠. 어설프게 발타자르(백윤식 분)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환상을 보여 사고를 내거나 옆집 남자를 살해하는 등의 장면을 넣으면서 악령의 변신 능력보다 외적인 힘이 더 부각되는 느낌입니다. 악령의 존재를 메인으로 하지 말고 변신이라는 주제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보다 스릴 넘치고 긴장감 있는 영화가 되었을 텐데 말이에요. 엑소시즘이라는 큰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변신이라는 주제를 더 다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선택입니다.
영화 초반부만 하더라도 제법 흥미 있는 전개였습니다. 적절한 긴장감과 놀라게 하는 몇몇 장면은 영화의 장르가 ‘공포, 스릴러’가 맞다는 인식을 주었죠. 하지만 점차 진행되는 전개 과정에서 공포도 스릴러도 놓쳐버렸습니다.
사이다가 무척 필요했습니다. 뻔히 보이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는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영화 중반부 악령의 존재를 알게 된 강구 가족은 왜 굳이 따로 행동을 할까요. 왜 둘째는 야밤에 혼자 지하로 내려가는 걸까요. 왜 악령은 직접 죽일 수 있으면서 굳이 귀찮은 일을 벌이는 걸까요...
악령의 행동이 허술하단 것도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악령의 능력에 있어 제한이라도 있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는 능력을 써서 죽이면서 왜 남은 강구 가족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영화를 전개시켜야 하기에 개연성이 없는 스토리가 만들어진 거죠.
영화는 억지로 이어 붙인 듯 스토리도 엉성하고 뻔한 장면들은 한숨만 나오게 합니다. 같이 갔던 한 지인은 공포 영화를 싫어하지만 사람들의 강권으로 보게 되었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전개에 무섭지도 않고 보는 내내 웃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타자르의 영어는 하면 안 되었습니다. 필리핀 주교라는 설정도 스토리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밖에 보이진 않습니다. 외국에 있어 오는 시간이 걸린다는 설정, 신부와의 연락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설정 그리고 신부를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그냥 한국 내의 성당 주교로 설정하고 다른 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마지막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엑소시즘은 어느덧 판타지 물로 바뀌어 악령은 자기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신부는 자기를 희생해 악령을 퇴치해버립니다. 순간 가운뎃손가락을 살포시 들어 올리던 키아누 리브스가 떠오르긴 했습니다만... 결국 그렇게 악령을 퇴치하고 시트콤에서나 볼 법한 흑백 화면으로 전환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코즈 유어 마이 걸~ 노래 나오는 줄).
변신은 딱히 해석을 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 영화,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도가 더 떨어지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든 생각이 있는데, 제목이 변신이 아니라 X신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엑소시즘이 요즘 좀 먹히니 트렌드 따라 만들어는 봐야겠고 스토리를 짜다 보니 엑소시즘에 충실하게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서운 것도 아니고 스릴 있는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