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와 나누는 소소한 담소 - 소소한담(小小閑談)
매거진 목요일에서는 센터 내 한 명의 크리에이터와 나눈 소소한 담소가 연재됩니다.
진짜 크리에이터의 일상을 담백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 소소한담(小小閑談) 여덟 번째 이야기는 크리에이티브센터 BX랩의 디자이너 이경민 님입니다.
항상 누구나에게나 친절하고 힘쓰는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맨 처음 생각나는 친절한 근육남. 최근 티몬 익명 게시판에 어느 여성분이 크리에이티브센터 ㅇㄱㅁ의 여자 친구 유무를 물으면서 티몬 슈퍼스타 등극. 여자 친구 없으니 언제든 편하게 관심 가져 주세요. 제발.
▷경민님 안녕하세요, 센터장님께서 다음 타자로 선정하셔서 여덟 번째 주인공이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센터장님의 소소한담을 읽다 마지막 줄에, 제 이름 봤을 때 든 생각은.. 역시.
평소엔 제게 재미없다고 하시더니, 츤데레처럼 저를 지목해주시고..(내 이야기가 재밌었나봐. 데헷)
사실 저 역시 제가 진지보스라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걱정돼요. 한편으로 언제 이렇게 제 이야기를 하는 기회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소소한담의 제목처럼 어깨의 힘을 빼고 시작해야겠어요. 4년 차 디자이너의 현실적인 고민. 30대 남자의 거창하지 않은 바램을 소소하게 이야기해볼게요.
▷이제 티몬에 입사 1년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경민님이 입사 후 배송 개선부터 236:D 론칭 등 다양한 일을 하셨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한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벌써 티몬에서 1년을 보냈다는 게 새삼 놀라워요. 티몬에서 유독 슈퍼마트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슈퍼마트 계란 배송이에요. 계란을 주문하고 싶은 고객들이 가장 구매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뭘까요? 맞아요. 계란이 깨지지 않을까. 깨지지 않게 배송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깨지는 이유를 패키지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구조화된 패키지를 변경하는 건 포장 비용의 증가로 어려웠어요. 깨지지 않아야 하고, 비용이 증가하면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도록 고민했어요.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슈퍼마트에선 안전하게 계란을 받아 보실 수 있어요."
▷경민님은 프로젝트에 있어 세상 고민꾼인데요.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면 일 설계할 때 어떤 고민을 거치시나요?
▶거창한 게 있지 않아요. 친구와 다퉜을 땐 왜 맘이 상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내 말투가 잘못된 건지 내 행동이 잘못된 건지..(물론 복합적인 이유일 때가 많지만;) 프로젝트도 똑같아요.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해요. 앞서 얘기 한 계란 배송에선 계란이 깨지지 않고 고객에게 전달되는 것 외에 패키지 디자인은 부수적인 것이잖아요. 그래서 트레이 하나만 넣어 깨지지 않도록 포장했어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복잡했던 고민거리들을 단순하게 만들었죠.
▷디자인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은 무수히 많지만, 경민님이 작업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가 있다면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디자이너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해요. 이솝우화에 좋은 사례가 있어요. 우리가 아는 여우와 두루미의 이야기예요. 여우가 음식을 접시에 담아 대접해 두루미가 먹지 못해요. 이후 두루미가 호리병에 담아 대접한 음식 역시 여우도 못 먹어요. 디자인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요. 여우와 두루미의 다름을 이해하고 모두에게 먹기 좋은 디자인의 그릇을 내놓는 것. 이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개성이 모여있는 좌충우돌, 티몬 BX랩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BX랩은 컬러풀해요. 창의적인 일을 하는 디자이너는 무엇보다 자신 만의 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하지만 디자이너가 현업을 하다 보면 색을 유지하기보단 소모하는 환경에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티몬 BX랩은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 만의 색을 내고 있어요. 환경이 갖춰져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전을 통해 농도가 짙어졌다 생각해요. 처음 입사했을 때 흐릿했던 제 색도 동료분들의 영향으로 짙어짐을 느껴요. 동료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개성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 BX랩만의 매력이에요.
▷경민님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이너" 란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디자이너는 앞서 이야기한 나음의 철학을 갖고 있어요. 나음을 나다움으로 해결하는 것. 본인의 의도가 담긴 방법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라 생각해요.
▷그런 좋은 디자이너의 모습을 갖춘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BRAUN의 디자인을 좋아해요. 제 취향은 더하기보다 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우리가 한번쯤 들어 본 "less is more"처럼 디터 람스의 제품 역시 어떤 걸 더 넣을까보다 뺄까를 고민한 결과물이에요. 제품의 본연의 쓰임에 필요한 것 외에는 과감히 없애는 그의 철학을 잊지 않으려 해요.
▷경민님은 늘 배우는 것에 욕심이 있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배워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 저것 많이도 배우고 다녔어요. 디자인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를 결정하기 어려웠던 제 선택 장애가 한 몫했죠. 제가 내린 결론은 세분화를 고민하지 말고 디자인 하나에 몰두하자였어요.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기쁨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나왔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복합적인 문제로 상품을 못 만들 때가 많이 있죠. 그래서 내 생각이 깃든 상품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걸 배우고 싶어 졌어요. 언젠가는 제가 기획하고 디자인한 제품을 만들어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인기남으로 등극하셔서 이건 안 물어볼 수 없겠네요.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많은 경민님인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사람의 매력은 어떤 것이 있나요? 어떤 사람을 볼 때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나요?
▶질문처럼 여성분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전 브로맨스가 많아요. 사람의 매력은 고유의 취향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 온 세포의 신경이 집중된 적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그런 경험으로 그들의 공통점을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스스로 선택해요. 매일이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들이 모여 고유의 취향을 만들죠. 그 취향으로 스스로를 스토리텔링 할 줄 아는 사람. 세포까지 집중될 정도로 매력적이에요.
▷경민님의 옷 스타일이나 평소 가지고 다니는 소품을 보면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다면요?
▶추구하는 스타일은 생활양식에서 나온 것 같아요. 저는 간소화하려고 노력해요. 미니멀 라이프 이런 거창한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사는 걸 좋아해서 시간이 지나니 집에 산더미 처럼 물건이 쌓였어요. 지금은 낭비되지 않도록 카테고리에서 저에게 적합한 딱 하나의 상품만 구매하려고 해요. 물론 아직도 제방은 발 디딜 틈 없이 물건이 쌓여있지만, 며칠씩 구매를 미루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이 들 때 결제버튼을 눌러요.
▷경민님은 책을 자주 읽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좋아하는 독서 장르나 작가, 혹은 주제가 있나요?
▶책을 많이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독하지는 못해요. 집중력이 부족한 탓에 한 달에 한권만이라도 읽자며 다짐을 했어요. 소설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인문 서적이에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책을 읽는 독자거든요. 근래 재밌게 읽은 책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에요.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소제목처럼 항상 글쓰기를 바라지만 쓰지 않는 저를 꾸짖어준 책이죠. 책을 읽고 난 뒤, 생각이 날 때마다 짧은 글을 적고 있어요.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메모장 어플 안에 잠들어 있는 제 글도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보아요.
▷경민님은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거워하는 편인가요?
▶최근 변화를 느끼려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단 걸 알았어요.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거나, 매일 보던 사람이 아닌 오랜만에 보는 사람을 만나거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보는 것처럼 시간, 사람, 공간이 일상에서 변화를 줄 수 있대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세 가지 중 전 공간을 많이 바꿨더라고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소도 관심이 생겼어요. 좋아하는 장소를 떠올려보면 세월의 때가 묻은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시간의 흐름이 공간에 묻어난 특유의 향이 이유 같아요. 최근 홍콩 여행에서도 현란한 건물의 파사드 뒤에는 그들만의 생활이 녹아있는 도시의 꿉꿉함에 매료됐어요. 오르막 길에 층층이 세워진 건물들의 블록이 바뀌는 순간 시간을 초월한 기분까지 들더라고요.
▷저도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궁금하면 경민님에게 종종 물어보는 편인데요. 최근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인가요?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공간을 소개드리고 싶어요. 전 작은 책방을 좋아해요. 같은 책이라도 소규모 책방에 놓여 있으면 책의 분위기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와요. 아마 책방의 주인이 정성스럽게 고른 책들 사이에 한 권을 집어서인지 묘한 애착이 가는 느낌이랄까. 해방촌의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책방 "고요서사"를 만날 수 있어요.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한 택배 상자의 편리함도 물론 좋지만 가끔은 가볍게 산책 후 살펴보는 책 한 권이 잃어버린 감성을 깨워줄지 모르잖아요.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책 한 권을 품에 안고 해방촌을 내려왔음 좋겠어요.
▷경민님은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나요?
▶ '낯선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매일 보던 친구가 머리를 바꿨는데 갑자기 심쿵 할 때 있잖아요? 친구의 낯섦에서 매력을 느낀 적. 디자인도 똑같다 생각해요. 매일 보던 익숙함이 낯섦으로 다가와 마음이 '심쿵'하는 디자인. 익숙함에서 낯섦을 발견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하나 더 이야기드리고 싶은 건, 디자이너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어요. 디자인은 단순히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활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디자이너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네이드 버크'의 좋은 강연이 있어 아래 공유드리고 싶어요.
https://www.ted.com/talks/sinead_burke_why_design_should_include_everyone?language=ko
▷마지막으로 소소한담의 공식 질문! 인기남 경민님이 소소한담 아홉 번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추천하고 싶은 분을 알려주세요.
▶센터에 부지런히 등산을 다니는 등산 애호가가 있어요.
북한산 앞에서 볼 법한 복장으로 버킷햇을 눌러쓰고 출근하는 그녀.
쌘 누나 같지만 누구보다 여린 마음의 등산 애호가.
친환경 디자이너의 산 이야기.
제 다음 소소한담은 VX랩의 박지혜 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