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태국에서 마무리하며
2018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는 태국을 찾았습니다.
산, 바다, 유흥, 쇼핑, 쾌락, 예술, 기도.. 원하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태국은 그렇게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들을 커다란 팔레트에 담아 건내어 줍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관대함에 여행자는 아티스트가 된 기분입니다.
저는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 명상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파란색과 녹색을 거침없이 캔버스 위에 뿌려 푸르른 바다와 우거진 정글을 표현하고
그 위에 미소지으며 명상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다소곳한 모양으로 얹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1년동안 여러 앱의 도움을 받아 총 1606분의 명상을 해왔습니다.
산속의 새 지저귐이나 끊임없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깔고 눈을 감은채
다정하게 호흡을 가르쳐주는 목소리를 따르며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하루 평균 5분이 채 안되는, 아직 유혹에 많이 흔들리는 연약한 습관이지만
올해 2018년을 지탱해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태국에 온지 일주일 차,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금 저의 그림은
고요한 수채화보다는 재즈음악이 더 어울리는 즉흥 추상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1년 넘게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쌓여있는 웨딩 참석 감사 편지들,
색이 바래져버린, 혹은 어색함에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인연들에 대한 미안함,
반복되는 실수와 극복하지 못하는 약점들에 대한 자괴감,
그 모든 일상의 잔여물들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부유하다 캔버스 위로 툭툭 털어져 자국을 남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댓가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비싸지는 것은
아마 해마다 쌓여가는 그러한 부유물들의 무게 때문일지 모릅니다.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어느 날, 인도가 좁아지다 못해 돌조각들로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길을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차를 피해 조심히 걷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가장 명상같은 여행을 하고 있었다는 걸요.
명상은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아니라 마음을 응시하는 과정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자아라 여기는 것이 실은 그저 연속적으로 사방에서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의 합일지도 모른다는 것, 사실 인간은 처음의 목표 혹은 기대와 달리 계속해서 주의 집중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바쁘게 돌아다니는 원숭이같은 마음을 묵묵히 따라다녀주는 신체가 여기 건강히 있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을 재발견하고 상기시키는 과정 속에서 한층 더 겸손해지는 것이지요.
일상의 프로그램이 가지런하게 짜여진 나의 집 샌프란시스코에서가 아닌,
한적한 골목을 돌면 수많은 인파들이 쏟아져 나오는 또 다른 골목,
떠들썩한 시장 뒤에 숨어있는 고즈넉한 절과 찻집,
세계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 찾아오는 방콕여행자의 장트러블,
허물어질듯한 주택 너머로 보이는 눈부신 유리빌딩,
그렇게 끊임없이 기대와 질서를 철저히 어기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미지로 가득한 이 나라 태국에서 그 상념들이 오히려 더 뚜렷이 보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나는, 참 가진 것들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 가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그래서 새해를 맞이 하는 밤,
새로운 소원을 기도하는 대신, 욕망을 더하는 대신
우리를 더 우리답게 만드는데 방해를 하는
걱정, 장애물, 피로, 과거의 상처를 종이 램프에 담아 실어 보냈습니다.
저 멀리 하늘로 점이 되어 사라질때까지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새해소망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계속해서 명상을 하고,
계속해서 여행을 떠나고,
계속해서 저의 "완벽한 불완벽함"을 사랑할 것입니다.
2018, 29살과 30살 사이의 주원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독자님과의 소통을 사랑합니다.
인스타 @juwon.kt에 방문해주셔서 더 잦은 업데이트와 글조각들을 만나시고,
여러분들의 소식도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