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UX리서처로 미국에서 첫 직장 구하기 4가지 팁
살면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결심을 내리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는 개인의 역량 뿐 아니라 운이 따라주어야 하고, 사회적인 환경도 잘 갖춰져야 하기 마련입니다. 멘토링을 하다보면 UX로 전향해야겠다는 결심은 굳게 세웠지만 결심을 실행할 방법을 알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답답해 하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요.
사실은 저 역시도 멘티 분들께 ‘이 길을 택하세요' ‘저걸 해보세요'라고 명쾌하게 답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이유는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UX는 다양한 전문 지식과 기술이 융합되는 분야인 만큼 UX 프로페셔널 각자가 UX로 흘러드는 길 또한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10명의 UX 디자이너를 만나면 적어도 5가지의 다른 대답을 들을지 모릅니다. 학부시절부터 UX를 전공으로 했던 젊은 디자이너들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UX 프로페셔널들은 자신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로 UX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도 선뜻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질 못하는거에요–자신의 경로가 이 사람에게도 적용이 될만한 방법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 경험을 공유드리기 앞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 이야기는 저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분들, 즉
마케팅업에 종사하셨던 분들, 혹은
학교에서 디자인이나 광고 예술과 같은 실용예술 분야를 전공하고 계신 분들, 그리고
해외 취업 (특히 미국)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
께는 알맞는 예시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다른 분들께는 조금 거리감있게 느껴질 수 있을거에요.
(지난 <1>편의 글을 보시지 않았다면 먼저 여기를 방문해서 읽어보신 후 이 글을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creativejuwon/73
UX으로 전향하겠다는 결심을 한 시점에 저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예술 대학원Academy of Art에서 광고 석사 프로그램을 절반 정도 수료한 상태였어요. 학과장님의 지지 덕분에 굳이 전과를 하지 않고, 남은 절반의 프로그램을 전공에 상관 없이 UX에 도움이 될 만한 수업들로 구성했습니다. 예컨대, 광고과에서는 ‘전략가를 위한 리서치 수업' ‘브랜드 전략' 등의 UX리서치 과정 및 프로덕트 개발 기획과 밀접해 보이는 수업들이나 카피라이터를 위한 심화과정에 속했던 ‘Writing for UX’를 택했구요. 전공 밖에서는 산업디자인과의 ‘Ethnographic Research Methods’라던지 웹디자인과의 ‘Visual Design Strategy’, ‘Principle of UX’ 를, 그리고 교양 수업으로 문화인류학Anthropology를 택했죠. 제가 다녔던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는 이런 유연함이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바깥에서도 UX 커뮤니티를 열심히 기웃거리고 다녔어요. 대외 경험은 UX에 도전해보겠다는 새로운 결심에 더 큰 동기부여를 일으켜주고, 내가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해 개선시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깨닫게 해주었어요. 대외 경험이라고 해서 꼭 공모전이나 포트폴리오에 관련된 이벤트를 말씀 드리는게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저에게 가장 큰 확신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던 경험은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턴시 IDEO에서 진행한 Design Thinking for Life라는 이벤트였어요. 디자인 씽킹의 방법론을 활용해서 삶의 고민을 돌이켜보고 해결안을 도출해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시간이었는데요. 발표에는 알레르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발표하는 것을 꺼려하는 제가, 그 자리에서만큼은 낯선 사람들과 팀이 되어 리드를 하고 신이나서 발표를 했어요. 그런 자신을 스스로 지켜보면서 ‘어머 나 뭐야, 나 이거 진짜 좋아하나봐' 하는 놀라움, 그리고 UX에 계속 도전해볼만 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죠.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해서 레주메에도 올리지 못하는 UX 관련 경험들이야 말로 지원하는 족족 탈락하거나 좋은 포트폴리오 피드백을 받지 못해 좌절할 때마다 저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어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UX 분야에는 다양한 경력과 경로를 거쳐오신 분들이 많기에, 나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정답을 구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점을 넓히는 게 좋아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 즉 나와 비슷한 배경과 경로를 거쳐서 내가 다다르고 싶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쌓는 것입니다.
저는 취업까지 도와준 아주 고마운 멘토를 학교 웹디자인과의 Principle of UX 수업에서 만났습니다. 바로 강사 조Joe 였죠. 그는 당시에 익스피디아Expedia에서 서비스 디자이너Service Designer로 일하면서 부업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첫인상부터 꼼꼼하고 예민한 다른 디자인 학부 교수님들과는 결이 달라 시원시원하고 여유가 넘쳐보였어요.
웹디자인 전공생으로 가득한 수업에서 저는 뭔가 미운오리새끼가 된 것 같은 느낌에 잔뜩 긴장을 했고, 절박한 마음에 첫 수업이 끝나고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저는 UX 일이 하고 싶어서 교차수강하는 광고과 학생이에요. 웹 디자인쪽으로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 따로 질문 좀 많이 드릴게요. 도와주세요 ㅠㅠ"
그는 너무나 쿨하게 대답했습니다.
“오 그래? 나도 광고과 출신이야. 걱정마. 잘해보자.”
저처럼 광고를 전공하다가 UX로 전향한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저의 멘토가 되어주세요!!!’라고 프로포즈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당장 무릎꿇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었지만), 그 이후로 조에게 자연스럽게 더 다가가고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광고과 출신이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조도 제가 도움의 손길을 뻗을 때마다 흔쾌하게 잘 도와주었구요. 제가 디자이너와 리서처 포지션 사이에서 고민할 때 유일하게 ‘너라면 리서처도 될 수 있지'라고 얘기해준 분이기도 했어요. (당시 주변의 모든 분들 께서는 입을 모아 리서처가 아닌 디자이너로 첫직장을 구하라고 조언하셨어요. 리서처를 채용하는 회사도 적을 뿐더러, 저의 석사 프로그램에 디자인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디자이너로 포지셔닝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다는게 이유였죠. ‘디자이너냐 리서처냐'의 이슈에 대해서는 곧 한번 자세하게 적어볼게요)
조와 무사히 학기를 마치고 마지막 학기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던 중에 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팀에서 리서처 뽑길래 네 이름 한 번 추천 후보에 넣어봤어. 시니어 리서처를 뽑는 자리니까 기대는 하지마. 그냥 너 면접 연습 해보라고.”
미국에서는 정식 채용공고를 올리기 전 직원들에게 추천(리퍼럴)을 받는게 관례입니다. ‘낙하산'이라고 하기에는 추천받은 후보들도 엄격히 면접 과정을 다 거치는데요. 리퍼럴을 통한 후보는 일단 추천한 직원의 신용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이도, 채용하는 이도 서로 더 리스펙트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렇게 멘토 덕에(?) 엉겁결에 리서처 포지션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취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멘토 분들이 멘티들을 취업의 문까지 이끌고 가주지는 않아요. ‘리퍼럴'이라는 것이 앞서 말했듯 본인의 신용이 달린 문제라서, 아무리 멘토라고 해도 같이 일해본 사이가 아니고서는 선뜻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죠. 그런 면에서 제가 운이 좋았던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운을 얻기 위한 기회를 넓히는 데에는 저의 노력도 작용했다고 봐요. 조가 저를 선뜻 리서처 자리에 추천해 준 것은 제가 수업을 성실하게 들었고, 리서처가 되고싶다고 말을 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 역시 광고 전공 출신인 한 사람으로서 제가 광고 전공에서 얻은 전문지식이 어떻게 UX 분야에서 활용이 될 수 있을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멘토-멘티 관계라는 것도 다 결국 사람 관계인지라, 서로 공통점이 많을 수록 그 관계는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어있어요. 반드시 취업의 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멘토분들이 여러분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기회와 지혜는 여러분들의 상상 이상일 수 있습니다.
3개월 후, 저는 익스피디아에 시니어 리서처가 아닌 미드레벨 리서처로 채용이 됩니다. 당연히 시니어 리서처를 할만한 짬밥(?)은 되지 않았지만, 당시 면접에 참여했던 동료분들께서 저의 면접 과정을 매우 인상 깊게 지켜보셨고, 그래서 저를 추가 채용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채용공고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바이블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만약 조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저는 익스피디아의 채용공고를 보고 절대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는 시니어가 될 자격이 없어' ‘여기 봐봐 자격 요건에 다 미달이잖아' 이런 생각으로 말이죠.
경력을 쌓고 채용하는 입장이 되고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생각보다 많은 경우 회사는 ‘막연한 마음'으로 채용공고를 올립니다. 회사들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건 경력이 있는 이들이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할거라는 ‘막연한' 기대치가 있어서인거죠. 우리가 데이트 프로필에 선호하는 이상형 써놓은 그대로 남자친구를 사귀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채용공고를 꼼꼼히 분석해서 이 회사가 어떤 곳이고 UX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채용공고가 재단해놓은 ‘자격 조건'에 섣불리 맘상해 하지는 마세요.
‘여기에 꼭 붙고 싶다!’라는 마음은 언감생심인것 같아서 ‘조의 얼굴에 먹칠은 하지 말자' 라는 다짐으로 채용과정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조의 추천으로 제 연락처와 이력서가 회사에 공유된 후, 채용 담당자hiring manager와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고, 통과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 시스템을 통해 정식으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그 후 리서치 챌린지research challeng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면접이 진행되었죠.
리서치 챌린지는 회사가 샘플 시나리오를 지원자에게 제공하고, 지원자는 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리서치 계획을 설계해서 발표하는 것입니다. 리서치 챌린지가 부여되면 지원자가 면접 준비에 더 큰 공을 들여야 하므로 회사 입장에서는 비교적 진중한 지원자를 모을 수 있고, 동일한 리서치 챌린지를 모든 지원자에게 부여하기 때문에 지원자들을 비교평가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설령 지원 하는 직종의 관련 경력이 부족하더라도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저는 리서처로서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것들을 당장 채우기에는 시간도, 역량도 없었죠. 대신, 제가 가지고 있는 강점 세 가지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1. 실용적인 해결안 제시
비록 UX 관련 경력은 부족하더라도 여러 회사에서 근무해오면서 얻은 ‘일머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원자의 ‘일머리 부족현상’은 당연 경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 분들도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아카데믹에 있다가 리서처 포지션을 지원하는 분들에게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제죠.
저는 리서치 계획안을 1장짜리로 정리한 후에, 그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당장 활용 가능한 내용이고, 내가 철저하게 고민해보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팀들이 실제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할때 자주 쓰는 툴, 트렐로Trello 보드에 다시 한번 펼쳐 보였어요. 리서치가 어떤 단계로 나뉘고, 실제로 각 활동에서 어떤 리소스가 필요하고, 어떤 포지션들이 협업을 하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죠.
이걸 준비하면서 스스로 ‘탁월한 전략이야!’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 면접에 참여했던 동료들이 이 트렐로 보드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저를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 시켜준 요인이었다고 말하더라구요.
2. 디자이너 친화적인 시각적 프레젠테이션
리서치 계획서의 진짜 포인트는 내가 지금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고, 그래서 어떤 전략으로 문제를 접근하겠느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리서치 계획서는 그냥 가지런하게 정리된 리서치 요약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사용자 친화적이 될 수 있도록 동기화 시켜주는 설득의 표현물입니다.
따라서 저는 주어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저만의 리서치의 원칙을 디자이너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식화 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시각적 자료를 많이 활용한 데에는 사실 외국인으로서 겪는 언어의 장벽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도 있었어요. 괜히 한 단어라도 잘못 넣었다가 오자가 있거나 부적절한 표현이면 흉만 나는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를 집어 넣는 일에는 리스크가 따른다고 생각했죠.
3. 마케팅 전문지식 적극 활용
자신이 아무리 생초짜 사회 초년생이라고 할지라도,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면접을 볼 때에는 ‘내가 너희 팀에 이런 것을 기여할 수 있다. 이건 나 아니면 안된다.’ 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회사는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로 나를 뽑아주는 자선기업이 아니죠. 회사의 이기심에 닿을만한 가치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서치 팀 구성원들이 마케팅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경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저의 마케팅 전문지식을 비밀 병기로 내세웠습니다. 마켓 리서치와 UX 리서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일부 마켓 리서치 방법론이 UX 리서치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 것이죠. 특히 소셜 리스닝Social Listening (브랜드, 혹은 기업이 주로 다루는 키워드가 소셜미디어 콘텍스트에서 어떻게 회자되고 있는지 양적 및 질적으로 분석하는 기법)이 어떻게 전자상거래e-commerce기업인 익스피디아의 UX 문제에 활용될 수 있을지를 설명했는데, 이 부분을 채용 담당자가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저는 채용된 이후에 이메일 마케팅 팀과 협업을 많이 진행했어요. 이메일 마케팅 팀에게 UX 트레이닝을 실시하기도 하고, 이메일에서 컨버전으로 이어지는 사용자 플로우를 놓고 사용자 리서치를 벌이기도 했었죠.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엔 멘토링 해드리는걸 참 좋아했었는데 프리랜서와 양육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져서 메시지에 답변조차 드리지 못해 무척 아쉬웠어요. ㅠㅠ 그래서 제대로 커피챗과 커리어상담을 받으실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저의 글을 읽다가 UX, 해외 유학, 해외 취업, 커리어 전향, 자기계발, 글쓰기와 관련하여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연락주세요. 저도 여러분들의 사연을 듣고 더 열심히 고민해서 저의 경험담과 나름의 조언을 준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