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운동? 약물치료? 심리상담? 명상?
전부 다 아니다. 이들 모두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들이 때로는 불안을 오히려 키울 때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방법들이 의학적이고 학문적으로 다 검증되었는데, 당신이 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자격이 있나요?”
그렇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방법을 직접 경험했고, 그 과정을 통해 얻은 통찰과 깨달음을 나눌 수 있다. 오랜 시간 불안장애를 극복하려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도했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진정성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기존의 모든 방법들을 시도해 보며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을 없애려던 노력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나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운동에 집착했다. 매일 10km를 달리고, 크로스핏을 하며, 심지어 하루 15km를 달리는 극단적인 방식까지 시도했다. 처음에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불안이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조차도 불안을 잠시 가리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운동을 강박적으로 하게 되어, 불안은 더 악화되었다.
약물치료와 심리상담도 시도해 봤다.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심리상담도 마찬가지였다. 상담에서 들은 말들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했지만, 내 삶의 맥락에서는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의사들이 추천하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글쓰기 역시 처음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또 다른 강박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불안과 관련된 모든 전통적인 방법들이 내게는 궁극적인 해답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접하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되며 나의 오랜 불안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불안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 강연에서 강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그냥 계속 느껴보세요.”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을 갖고 살아가기 힘들기에 안 느끼려는 것 아닌가?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에 대한 수많은 책과 강연을 접했는데, 이런 말은 너무 황당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후의 설명을 듣고 이 말이 납득이 가게 되었다. 그분은 추가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것들은 단지 지나가는 경험일 뿐입니다. 정신과 의사 프리츠 펄스(Fritz Perls)는 ‘두려움과 흥분의 차이는 호흡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불안과 흥분은 결국 같은 감정이며, 단지 몸의 반응이 조금 다르게 표현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감정을 좋고 나쁜 것으로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감정은 통제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불안과 흥분이 결국 같은 감정이라면, 그것을 없애려 하거나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갈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불교의 가르침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불교의 공(空), 무아(無我), 연기(緣起) 사상은 모든 것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 주변의 모든 경계선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같은 구분이 그 사례다. 이러한 경계선은 단지 우리의 인식 속에 존재할 뿐이다. 이런 인식 너머에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행복이라는 경험이 있으려면 이에 상반되는 불행의 경험이 있어야 된다. 불안과 편안함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몸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편안한 이완된 상태가 있으려면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가 있어야 된다. 그래야 우리의 몸의 생체기관이 움직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연속선 위에 존재한다.
불안과 편안함은 함께 존재해야만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며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이제 나는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는다. 불안이 올라올 때, 나는 그것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불안을 없애려고 애쓸 때보다, 오히려 그렇게 받아들일 때 불안은 더 빨리 잦아든다. 마치 불안이 나에게 “드디어 나를 이해해 주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해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불안을 없애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불안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감정이라는 것. 이러한 시각의 변화가 내가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이 되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도 불안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불안은 당신을 무너뜨리려는 적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느낄 때마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돌보는 연습을 시작해 보자.
불안을 수용하며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점진적 근육 이완법’ (Progressive Muscle Relaxation), ‘자율이완법’ (Autogenic Training), ‘바디 스캔 (Body Scan)’이 있다. 유튜브에 이에 대한 수많은 지도 영상들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같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새로운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