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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볍게 바라보는 연습

by 크리터

어느 날, 지친 알바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물정 모르고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부럽다... 나도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언제부터일까? 어릴 때의 가벼운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가만 생각해 보면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아지면서부터인 것 같다. 중학생 때는 입시를 생각하고 고등학생 때는 대입을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취업을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연봉, 결혼, 노후 등 삶에 신경 써야 되는 잇슈들은 수없이 많아진다.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삶에 우리는 결국 이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하면 가볍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들을 볼 수 있다.



‘성공’ ‘경제적 자유’ ‘힘과 능력’등.



이 모든 것이 삶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다.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면 생활이 바뀐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의 경험이 바뀐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해야 되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갈래의 사람을 보곤 한다.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얻어 행복한 사람’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얻어도 불행한 사람’


성공한 연예인, 스포츠 스타, 정치인, 사업가 등 이 같은 사례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얻는다. 누군가는 성공을 했음에도 우울증이나 자살 등의 문제에 시달린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또 이 같은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얻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극심한 불안장애를 겪으며 누구보다도 삶이 무거웠던 나는 이런 행복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먼 옛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말했다. “모든 것의 문제는 마음에 있다”라고.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 『담화록』


이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뀌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지 어릴 때와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이 같은 반발심이 생길 수 있다.


“아니 주어진 일이 얼마나 많아졌는데 무슨 상황이 그대로라는 거야!”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어릴 때 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되고 더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얼핏 보면 이 말이 현실과 맞닿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어릴 때는 삶을 통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반면 지금은 삶을 통제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저항, 마찰력, 원자의 움직임 등은 20,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자연이 좀 더 오염되기는 했지만) 그런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 마음, 감정이 바뀐 것이다.


나는 알바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보이는 놀라운 특징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싫증 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그냥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 다른 것을 하고 논다. 그들에게 삶은 억지로 통제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다. 오직 즐기는 대상이다. 물론 그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 것은 때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도 적어도 마음으로는 이렇게 놓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식, 경제, 부동산 등 의 문제가 무조건 잘 돼야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들에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그것이 때론 싫증 날 정도로 지긋지긋해도 말이다. 이럴 때 어린아이처럼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불안장애로 약을 먹으며,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기에 그 기분에 대해 누구보다도 공감한다. 이렇게 걱정이 끊이질 않을 때 내가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고대 스토아철학자들이 실천했던 ‘부정적 시각화’(futurorum malorum præmeditatio)이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며 그런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고 수용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놓아버리는 기법이다. (나는 동시에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흘려버리며 머무는 작업을 한다) 현대 심리치료에 상상노출요법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렇게 하면 놀랍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최악이 사실은 최악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안 좋은 순간이든 반드시 거기에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래의 고통을 미리 떠올리면, 우리가 그것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세네카 『도덕서한』



어릴 때의 우리는 삶을 재미있는 게임처럼 대했다. 수학이 재미있었고, 과학이 재미있었다. 여러 복잡한 규칙들이 재미있었다. 게임을 하더라도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되어 있다. 그것에 우리는 목숨을 건다. 세상살이는 게임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상은 거대한 게임의 법칙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거대한 블루마블게임과 같다. 물론 여러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보는 관점에 따라 게임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이 게임을 좀 가볍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을 보다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게임이 잘 안 된다고 짜증 내고 초조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즐기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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