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의 어느 밤, 다가올 새해를 떠올리던 나는 수많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루 동안 쌓인 일들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들이 뒤엉켜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도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내가 손쓸 수 없는 일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떠올라 걱정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재작년 영어회화 학원에서 들었던 노래의 한 소절이 떠올랐다. (아마 몇 시간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배경음악으로 들은 탓일 것이다.)
당시에는 영어 공부를 위해 흘려들었던 노랫말이었지만, 그날 밤에는 그 문장이 유난히 깊게 다가왔다. (아마도 영어 강사님이 이 노래를 자신의 인생 곡이라며 가사의 의미를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았다.
놀랍게도, 묵직하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는 않았다. 마치 거센 파도 너머로 잠시 드러난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불안의 반대되는 태도는 ‘신뢰’라는 것을.
삶에 대한 신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완전히 알 수 없다.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경제나 주식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원치 않는 일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모든 것은 결국 다 지나간다는 것이다.
5년 전, 10년 전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다 지나갔다. 그때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추억이 되기도 한다. 삶은 어려움을 겪고, 거기에 적응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마치 뜨거운 목욕탕 물이 처음엔 따갑지만 시간이 지나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는 점차 그 뜨거움에 익숙해지고, 그 안에서 나름의 길을 찾아간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둔감화(Desensitization)’라고 부른다.
그러니 불안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이 아닐까.
삶을 신뢰하는 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이 밀려올 때,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보는 것이다.
만약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이런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일상 곳곳에서 이 같은 신뢰 속에 살아가고 있다.
길을 건널 때 차가 신호를 지킬 것이라 믿고, 비행기에 탑승할 때 조종사를 믿는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요리사가 알아서 잘 만들었을 거라 믿는다.
혹시 음식에 독이라도 탔을까 의심하며 주방에 쳐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작가 팀 클레어는 《불안 해방일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안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인내력의 부족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안의 반대는 ‘호기심’이라는 통찰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호기심은 어디서 비롯될까?
그 바탕에는 결국, 삶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
삶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어느 순간이든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걱정과 불안이 나를 압도할 때마다, 나는 다짐하듯 외친다.
삶을 신뢰하는 자세를 갖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