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말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결국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판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궁극적으로 최악이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최악의 상황’은 정말로 최악일까?
혹시 우리가 그렇게 판단하기 때문에, 혹은 감정적으로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에 최악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만약 어떤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최악이라 해도, 그 안에서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그래도 괜찮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최악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최악’과 ‘최선’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같은 상황이 어떤 이에게는 지옥 같은 일이, 다른 이에게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일이 많아 고단하다고 여기는 삶은, 일할 기회조차 없는 이에게는 부러운 삶일 수 있다. 우리가 힘겹다고 느끼는 일상은, 죽음을 앞둔 이에게는 ‘살아 있음’ 그 자체로 간절하고 찬란한 순간일 수 있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선 안 돼”라는 저항이야말로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다. 결국 무엇이 최악이고 최선인지는 우리의 인식과 해석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상황이든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어차피 삶은 단 한번 뿐이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끝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모든 순간을 ‘괜찮은 순간’, ‘소중한 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절대적인 ‘최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우주의 역동 속에서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은 모두 그 자체로 경이로운 최선의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