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말이 아닐까.
돌아보면, 내 삶은 늘 그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완벽함’을 요구한다.
‘완벽한 행복’, ‘완벽한 성취’, ‘완벽한 인정’을 얻어야 비로소 괜찮은 삶을 살고,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런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립적이고 안정된 삶, 인정받는 삶, 행복을 원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토록 완벽을 좇는 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독립, 안정, 매력을 가져다주었을까?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짐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은 무엇보다 완벽을 추구해 온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경쟁 속에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생이 학원 열 군데를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운전기사가 있는 친구, TV에 나오는 아역배우, 100평이 넘는 집에 사는 아이들…. 아이들끼리조차 전세와 월세를 구분하며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늘 뒤처진 아이였다. 공부도 평범했고 집도 남들보다 작았다. 도태감 속에서 시험불안과 대인기피를 겪어야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생각했다.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내 약함과 트라우마를 완벽히 극복해야 한다. 삶을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새벽마다 운동을 나갔고,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각종 자기계발 세미나를 참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진이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찾아왔고, 그 와중에도 나는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완벽을 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약을 처방받으러 찾은 병원에서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내게 깊이 남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까지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문제해결에 집착하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되고 삶을 무겁게 합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풀리기도 해요.”
처음엔 낯설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러나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삶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제를 무조건 없애야 할 나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기에 삶은 더 입체적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연결된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말했듯, 비극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내 문제에 매몰된 나머지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불안, 두려움, 수치심 같은 문제를 완벽히 없애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완벽한 행복, 완벽한 성취, 완벽한 매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우리는 그토록 원하는 것과 멀어진다. 완벽을 향한 집착이 곧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문제들은 끝없이 나타날 것이고, 그럴수록 완벽함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져 결국 우리는 탈진하게 된다. 안정은 멀어지고, 스스로를 매력적이라 느끼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완벽이 아니라 ‘충분함’을 추구할 수는 없을까?
충분한 행복, 충분한 안정, 있는 그대로 충분한 매력.
우리가 진짜로 바라는 기쁨은 완벽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마음속에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가볍게 하고, 더 깊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