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기계발 유튜브나 인스타 릴스를 보면 늘 비슷한 말들이 흘러나온다. “자신을 사랑하세요.” “자존감을 높이세요.”
아마도 그 말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 그 말에 매달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정확히 무엇일까? 멋진 성취를 이룬 내 모습,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대단한 지위를 얻고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기며 만족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높이는 것’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같은 뜻으로 여긴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가치 있는 나’만을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자존감 운동(Self-Esteem Movement)’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나는 최고야”, “나는 가치 있는 존재야”라는 확언을 반복하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사람들은 실패에 쉽게 무너졌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빛나는 나’만 붙잡다 보니, 넘어진 자신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다가올 때마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렸고 메모장에 적었다. 그리고 성취를 붙들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은 줄지 않았다. 성취가 쌓일수록 마음속 의심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긍정 확언과 성취에 더욱 집착했다.
그리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진짜 자기사랑은 잘나 보이는 나를 붙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순간의 나조차 사랑하는 것이 진짜라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인 뒤로 나는 달라졌다. 억지로 긍정적으로만 나를 바라보려 애쓰지 않았다. 대신 내 안의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어둠의 자식이 되리라"
빛이 생기기 전 우주에는 먼저 어둠이 있었듯, 아침이 오기 전 새벽에도 고유한 낭만이 있듯, 내 어둠 또한 삶의 일부였다.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마치 한적한 밤거리를 홀가분하게 걷는 사람처럼. 처음으로 “그냥 이대로 괜찮다”는 마음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이미 하나의 작품이니까.
최근 심리학에서는 자존감(self-esteem)을 넘어선 개념이 제안되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말하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자존감과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존감이 “나는 소중한 존재다”라는 믿음이라면, 자기자비는 그 믿음과 상관없이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다. 성취나 타인의 평가에 따라 흔들리는 자존감과 달리, 자기자비는 실패와 고통 속에서도 나를 품어 안는 힘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비교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건,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친절 아닐까? 세상이 뭐라 하든, 내가 나를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진짜 자기사랑은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선언이 아니다. 가치 없어 보이는 나조차 품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