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유를 깨닫기까지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성공을, 누군가는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는 즐거움을 행복이라 말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특별한 상태나 도달해야 할 목표로 여긴다. 마치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최종 목적지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예전에는 긍정적인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믿었다. 매일 기쁨이 넘치고, 늘 자존감이 높으며, 활기찬 하루를 보내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동기부여서적이 말하듯, 그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니었다.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좇는 일이었다. 나는 늘 활력 있고, 긍정적인 것만을 추구했다. 어릴 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그것이라도 붙잡아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결코 항상 긍정적일 수 없었고, 원치 않게 부정적인 상황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알게 되었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억지로 덮으려 할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불안장애는 더욱 심해졌고, 부정적인 감정에 점점 예민해졌다. 나중에는 모든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리 상담을 받던 중, 상담사에게 내가 바라는 삶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매일 기쁘고, 아침마다 상쾌하게 일어나며, 늘 활기차고 에너지로 가득 찬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때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매일 기쁘고, 늘 자존감이 높으며, 항상 활기차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은 본래 긍정과 부정이 오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어쩌면 나는 ‘부정을 부정’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부정적인 감정을 나쁜 것이라 여기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 더 나아가, 어쩌면 나는 ‘삶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본래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것인데, 긍정만을 추구하는 것은 반쪽짜리 삶에 불과하다.
게슈탈트 치료법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정신과 의사 프리츠 펄스(Fritz Perls)는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우리의 해석에 불과하다고 한다.
불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통찰을 볼 수 있다. 불교의 공(空), 무아(無我), 연기(緣起) 사상은 모든 것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세상의 모든 경계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같은 구분은 우리의 인식 속에 존재할 뿐이다. 그 인식 너머에서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이다.
《도덕경》에서도 세상은 상반된 것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플러스와 마이너스,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 반대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경험이 있으려면 불행이라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과거에 어딘가에 소속되었던 경험이 있다는 증거다. 모든 경험은 상대적이다. 독일의 가톨릭 수도사 마이스트 에크하르트는 세상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無)이며, 그 속에서 신의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금씩 마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여전히 두려울 때가 많다.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잊으려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면서 점차 편안함을 느끼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선경 심리학자의 마음챙김 세미나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심리학에서는 이제 더 이상 ‘행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을 쓴다. 웰빙이란 단순히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다.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답게 잘 지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웰빙이다.
삶의 부정적인 면을 수용하는데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이든 망해도 된다. 나 자신이 마음 것 초라해져도 된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허용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이를 반복함으로써 점차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다. 행복과 불행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자유. 삶의 알록달록한 면면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 긍정이든 부정이든 전부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자유.
그 자유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어디에나 있다. 수많은 철학(불교, 스피노자, 스토아철학)에서 그 기쁨, '존재함'은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자연과 우주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 처럼 그 기쁨은 공기와 같고, 산소와 같다. 그것은 우주를 이루는 진공과도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