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존감 운동이 유행이었다. ‘자존감 높이는 법’, ‘자존감 높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동’과 같은 키워드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흐름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런 키워드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한때 그런 키워드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남과 비교할 때 스스로가 너무 부족하고 초라해 보여 비참한 기분이 들 때, ‘자존감 높이기’는 내 알고리즘에서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나는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튜브나 책에서 말한 대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확언을 속으로 되뇌었고, 이를 메모장에 적어가며 성취경험도 꾸준히 쌓았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려 애썼다.
그런데 생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진 것이다. 아무리 성취를 이뤄도 가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의심만 깊어졌다. 결국 나는 번아웃을 경험했고, 자존감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세간에서 알려진 ‘자존감 높이기’가 결국 나를 행복한 길로 이끄는가?
자존감(self-esteem)이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믿는 정도를 말한다. 언뜻 보면 열등감과 좌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개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개념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바로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기준이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자존감과 관련된 심리검사를 받아보면, 타인과 외부 환경과 관련된 항목이 적지 않다. (타인과 비교해 볼 때 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항목이라거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사회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유능하게 여겨 만족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 사회의 기준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를 보자. 그는 예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다.
결국,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자존감을 높이라”는 메시지에는 사실상 ‘스스로를 (사회에 기준에 맞춰) 가치 있게 여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그 결과, 자존감을 높이려 애쓰다가 오히려 더 자존감이 낮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기사랑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근 심리학에서는 자존감(self-esteem) 보다 확장된 개념이 제안되었다. 그것은 바로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확립한 자기자비(self-compassio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자존감과 혼용해서 쓰고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존감(self-esteem)은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믿음이라면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어떠한 순간이라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타인의 평가나 개인의 성취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는 반면 자기자비는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돌본다.
서로를 비교하며 가치를 매기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자기자비가 아닐까?
세상이 나를 아무리 가치 없게 여겨도, 나는 나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자존감이 낮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세간에서 말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들을 종종 한다.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질투할 때도 있고, 확신 없이 머뭇거릴 때도 있다. 힘들 때는 남들이 멀리할만한 행동들이 나오기도 한다. (정말 힘들 때는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자존감을 높일 생각이 없다. 이 모습 그대로 괜찮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의 평가에 맞춰 행동할 생각이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긍정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도 충분히 가치 있을 수 있고,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그것으로부터 혁신적인 것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를 매력적으로 보지 않아 멀리한다면 수도사처럼 혼자 사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수도사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수도사들 또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달리 그들의 실제 자존감은 낮을 수도 있다. (그들 또한 사회의 기준과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울해지는 순간들이 왜 없겠는가? 그들도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자비는 누구보다도 잘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기자비를 잘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물론 자존감이 높아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자비를 잘하는 사람은 자존감의 높고 낮음에 흔들리지 않고 행복하다.
그래서 요즘엔 이런 생각까지 든다. 가장 멋진 사람은, 사람들의 인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자존감이든, 사회가 바라는 긍정적인 자화상이든 말이다.
진짜 자기사랑이란,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 순간조차도 품어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