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브랜드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다.
이론상으로 우리가 특정 상표를 브랜드로 인식하려면 해당 상표의 로고와 이름 등으로부터 13번 ~ 20번 노출돼야 한다고 한다. 그제야 우리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할 때 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특정 브랜드를 떠올리게 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노출만으로 고객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내 생각에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 브랜드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얼굴, 순간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것과 같다. 친절한 종업원, 인상 깊은 광고, 캠페인 등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는 '특별한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3년 전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장 아끼는 마케팅 책(포지셔닝 Positioning)을 깜빡하고 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마케팅 관련 다양한 이론들을 비교 분석하며 나만의 해석과 관점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두고 나온 책은 온갖 필기와 질문, 반론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1년 간 공부한 엑기스들이 녹아든 소중한 책이었다.
책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안 것은 2주 정도 뒤였다. 책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책을 두고 왔을 법한 장소들을 모두 헤집고 다녔다. 어디에 가도 없자 마지막에 찾아간 곳이 2주 전에 들렀던 스타벅스였다. 혹시 2주 전에 책 하나 습득하신 것 없냐고 직원에게 묻자 그 직원은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하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아!!! 알아요 그 책!!! 기억나요!!! 진짜 다행이다!!!'
하며 사무실로 뛰어가서 책을 건네주었다.
'열심히 보신 것 같아서 꼭 찾아드리고 싶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소중한 책이었는데 책을 찾은 나보다 책을 찾아준 직원이 더 기뻐 보였다. 이런 특별한 계기를 통해 나는 스타벅스에 열광하는 팬이 되었다. 밥 먹을 때나 술 마실 때나 많은 이들에게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떻게 직원이 고객에게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지? 하는 물음에서 스타벅스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스타벅스 카드를 만들었으며 Gold Level 회원이 되었다.
차별화는 브랜드 철학의 집요한 실천에서 완성된다.
문화는 다수의 인간들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여 만들어낸 특별한 생활양식이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커피 브랜드들은 스스로가 커피가 아닌 문화를 판다고 '주장'한다. 내가 볼 때 스타벅스를 제외한 다른 커피 브랜드들은 '좋은 인테리어'를 제공하여 '커피 마시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특히 할리스커피, 카페베네). 이들에게 문화란 '인테리어 - 편안한 소파, 모던한 인테리어' 등에 한정되는 것이고, 사실 커피를 팔 기 위한 수단이다.
스타벅스는 정말로 문화를 판다. 내 나름의 정의로 스타벅스는 커피라는 '매개'로 벌어지는 활동들, 책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하는 등의 품격을 높임으로써 이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다. 이를 위해 스타벅스는 커피를 마시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들을 고려하여 디테일하게 그들만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통제한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하게 풍겨오는 커피향, 커피색과 어울리는 두꺼운 목재의 얇은 블랙프레임 테이블, 가죽소파,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 곳곳에 걸려있는 예술작품과 사진, 이 모든 것들의 통일성, 대화에 거슬리지 않는 볼륨의 생동감 있는 팝송 등. 이들 모두 모두 본사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설계된 것이며 모든 매장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음악의 경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화장실은 스타벅스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 있는 핵심적인 장소다. 대부분의 스타벅스 매장은 고객들이 매장 안의 화장실을 두고 빌딩 각 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스타벅스를 찾은 고객들이 분위기 좋은 카페에 머물다 음악이 이어지지 않는, 냄새나고 차가운 공간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화장실에서도 은은한 향과 음악, 따뜻한 온도가 카페 내부와 동일하게 전용된다. 가끔 더 가까운 빌딩 화장실을 두고 다른 층의 스타벅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때가 있어 불편할 때가 있지만 스타벅스 본사는 편의보다는 사용자 경험의 일관성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무조건 카운터로 가야 한다. 약간 불편하지만 카운터로 가서 물을 달라고 하면 머그잔에 물을 가득 채워준다.(바쁠 때는 플라스틱 컵에 채워주기도 한다.) 얼음을 가득 채워주기도 하고 따듯한 물을 주기도 한다. 다른 커피 전문점들은 보통 곳곳마다 배치된 분리수거통 선반 위에 물통과 물컵을 알아서 따라 먹으라고 올려놓는다. 때문에 물 마시는 곳이 반납된 지저분한 식기들과 쓰레기들로 지저분한 상태일 때가 많다. 물이 시원하지 않을 때도 많다. 컵도 작고 얇다.
고객 접점(직원, 고객 서비스 등) 관리도 섬세하다. 모든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다른 커피 전문점들보다 더 나은 급여와 기회, 교육을 제공한다. 고객과의 인간적인 교류를 위해 다른 커피숍들이 다 적용한 진동벨 알림을 사용하지 않는다. 커피가 나오면 고객들이 그들 앱에 등록해놓은 그들의 닉네임이나 이름을 불러준다.
이렇듯 스타벅스는 모든 측면의 경험을 고려해 고객에게 일관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모두가 문화를 판다고 하지만 스타벅스는 이를 자기 주관을 갖고 집요하게 실천하여 같은 슬로건 아래서도 뚜렷한 차별화를 성공했다.
좋은 브랜드는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 보다 한 명의 팬 fan을 소중히 여긴다.
좋은 브랜드는 브랜드에 열광하는 한 사람이 지닌 힘을 믿는 것 같다. 세계적인 벤처투자기관 Y-Combinator의 유명한 투자자 폴 그래이엄은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천 명의 고객을 확보하지 말고 한 명의 팬을 만들어라'라고 조언한다. 막연한 이야기 같아 실천하기 어렵다. 당장 제품이 많이 팔리는 일이 더 좋고 중요한 일 아닌가? 좋은 브랜드는 이 막연한 이야기를 진정으로 실천한다. 스타벅스는 특히 그렇다.
생일이 되면 공짜로 커피 한 잔을 주고, 새 메뉴가 나오면 쿠폰을 선물해준다. 자주 이용하는 고객에게는 더 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각의 고객을 '개인'으로 대하고 그들의 이름이나 닉네임을 불러준다. 신규 고객보다 기존 고객의 편안함을 고려하여 매장 안팎을 지저분한 현수막, 조약 하게 디자인된 프로모션 포스터, 스탠딩 베너로 도배하지 않는다. 그 결과 매장 안과 밖이 모두 품격 있고 편안하다. 신메뉴가 나오거나 대목이면 가게 안과 밖을 온통 광고물로 도배해놓는 경쟁사들과 대조된다. 때문에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진득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책을 보고 싶을 때 떠올리게 되고 방문하게 되며 주변 이들을 초대하게 된다. 전국 각지의 어느 스타벅스에 가도 브랜드와 동일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했을 때 어느 시점부터 고객에 의한 바이럴 효과가 요란한 광고와 프로모션을, 고객 평생 가치가 단기적 이익을 앞서게 되는지 정량화하기란 쉽지 않다. 좋은 브랜드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행한다. 용기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년 간 스타벅스를 애용하며 스타벅스에게 경험적으로 배운 것들이다. 지속 가능한, 진정한 차별화는 기업의 철학과 이에 대한 디테일한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기술회사는 회사 홈페이지 About us에 '혁신'을 외친다. 커피회사는 '문화'를 외치며, 패션 회사는 '개성'을 외친다. 외치는 것은 같으나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것이 창조되는 이유는 철학의 깊이와 집요한 실천, 장인정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를 실천하는 문화를 통해 브랜드는 각 고객에게 개인화된 특별한 계기 제공, 브랜드 팬을 만들어내고, 다른 것들로부터 명확히 구분될 수 있으며, 기업은 멀리 볼 수 있는 여유와 의사결정의 단순함을 얻게 된다.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타벅스 같이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영감이 필요할 때,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브랜딩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스타벅스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