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reative Uxer Sep 13. 2021

'투쟁'의 역사가 남긴 '시니컬'함

매번 비슷한 평가,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의 스타일

시니컬 cynical 하다. 


단어의 뜻을 보면 

1. [형용사] 냉소적인 
2. [형용사] 부정적인(중요하거나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3. [형용사]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냉소적인'이 주 뜻이지만, 어쨋든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어감에 조금 더 가깝다. 


그런데, 나는 왜 이 평가를 듣게 되었나?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번이나.


14년 반, 내가 UX를 해온 과정은 매일같이 '투쟁' 이었다.


경력의 2/3 정도를 대기업에서 UX를 하였는데, 

UX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계몽' 수준으로 교육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수월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그 기획의 대부분이 기존의 오래된 서비스를 새롭게 개선하는 것이라면, 

기존 인력들의 반발을 이겨내야했고, 때로는 질투와 미움의 타켓이 되어 욕을 먹기도 했다.


회사의 UX의 체계를 잡고 온라인/모바일 채널을 변화시키는 성과를 인정 받을때가 많았기에 

여러번 이직을 거치면서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었고 UX를 리딩하는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윗선에서 그 성과 하나만큼은 늘 인정 받아왔다. 


하지만, 기존 인력들이 보기에는 썩 편안한 그림은 아닐때가 많았을것이며,

무언가를 바꾸고 혁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UX라는 것은 명분이 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기획자로써의 소명을 다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런칭하고 제대로 된 UX를 바꿔 나가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따른 각종 논리와 반박할수 없는 원칙,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의 방향성, 상대방을 압도할수 있는 인사이트 를 가지고 부딪혀야 했다. 


때로는 반대에 부딪히고, 논쟁을 통한 설득의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기획 인생은 대부분 늘 '전쟁' 또는 '투쟁'과 같았다. 


나의 이런 성향이 처음 드러난 9년전의 평가이다.


직무전문성이 우수하며, 디테일과 책임감이 강하고 마인드이 우수함
상반기 당사의 모바일웹 및 앱서비스 구축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직무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음
다만, 호불호가 명확하여 일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함 
조직 내 부서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개선이 필요함.


전문성 측면에서는 좋은 얘기도 많이 있었지만, 부서간의 갈등을 많이 일으키고, 조율하지 못하는 점이 늘 단점이라고 했다. 특히 몇몇 부서의 고인물들과 극한으로 대립을 하기도 했는데, 매번 이것이 내 평가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나는 입에 발린 말을 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성향이다. 

이것이 성격은 아닌데, 일과 엮이지 않으면 얼마든지 양보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롭게 서비스를 혁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존에 잘못된 점을 지적할수 밖에 없었다. 

또한 제대로된 성과를 위해서는 적당히 마무리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주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는 맞는 말을 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는 내가 기획을 배우던 시절에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적당히 일해서는 웹은 변하지 않는다고, 기획의 본질을 배신하는거라고.

오늘 혁신하지 못하면 그만큼 뒤쳐지는 것인데,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투쟁하고 싸워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야 된다고 그렇게 배웠다.

( 물론 핑계를 대려고 하는거지, 기본적인 내 성향이 있었으니까 이 가르침에 반응했겠지만. )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도 '타협' 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오랜 기간동안 경력이 쌓이고 때로는 현실을 외면할수는 없었고, 소중한 하나를 지키키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들도 알게되었다. 매일 같이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전 협정'같은 것들도 필요함을 배웠다.


'옛날 같으면' 이라는 말도 술자리에서나 한번씩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고, 

예전에 모시던 팀장님도 '예전에 그렇게 했으면 너도 팀도 대박 났을거라고' 할 정도 였다.  

내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았구나, 나라는 사람의 성격도 변할 수 있구나 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멀지 않은 최근)

예전 말 들이 떠오르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니컬한 성격을 고쳐야한다'
'그래야 더 많은 기회와 평가를 얻을 수 있다고'


'내가 뭘 어쨋다고? 얼마나 더 협조적으로 일하라는건데 '라고 

속으로는 화를 냈지만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다.


그리고 몇몇 사건들이 떠올랐다. 

임원이 말하는 답이 틀린 답인걸 알고 있고 틀리다고 생각하지만, 힘이 없으니 수용하겠다고 했던 일, 

말도 안되는 요청을 주는 부서에게 제대로된 요청을 주지 않으면 UX업무는 착수할수 없다고 했던 일, 

현업의 일을 억지로 UX로 밀어내는 타부서 팀장과 끝까지 따지고 싸웠던 일 등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감사를 표하는 일들이었지만, 타부서나 위에서 봤을때는 여간 불편하고 맘에 안드는 행동이었을것이다. 돈을 버는 영업부서도 아닌 곳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이 맘에도 안들었을것이고.


한동안 고민하긴 했다. 

내가 시니컬함을 인정하고바꿔야 하나? 몇몇 사건들이 반복되면 나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정말 나를 바꾸는게 필요한 건가? 



결론, 이번에는 나를 바꾸지 않기로 했다. 


시니컬이라고 한것이, 부정적이고 네거티브한 자세로 일하는 것이라면 고치는게 맞다. 

적어도 최근 몇년간 그런 자세로 일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자세로 많은 팀원들의 행복과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위해 일했고 그 안에 업무 외적인 감정을 담지 않았다.


물론 업무적으로 부딪혔을때,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를 들였을때 반발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필요이상의 감정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논리적이려 애썼고, 적어도 공정하고 바른 길 위주의 선택을 했다. 


어자피 듣기만 좋은 입에 발린말 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반대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두려웠다.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는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는 내가, 자리를 위해서 성격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려는 내가 두려웠다. 이번에 그들에게 따라가면, 그들에게는 더 필요한 인재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획자로써의 자신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번 성찰의 시간 동안, 그들이 말하는 시니컬함을 버리기 보다, 조금더 내면을 가다듬고 자리나 평가가 아닌 본질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적당히 타협해서 좋은 UX, 좋은 서비스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은 하는 기획자'


그것이 어쩌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나의 스타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