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날에 쓰는 어워드 무용론
시작은 쪼렙 웹기획자 시절일 때였던 것 같다.
소속되어있던 에이전시에서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웹어워드에서 가장 높은 급의 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웹어워드는 (사)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에서 주관하는 어워드를 말한다
( http://www.i-award.or.kr/Web/ )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프로젝트였지만, 참여인력 구석에 이름 하나가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몇 년동안이나 이력서 한 줄에는 꼭 저 수상이력을 채우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웹어워드의 권위는 상당했는데
이 어워드를 제외하고는 달리 웹사이트의 우수성을 인증할 방법이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특히 웹에이젼시에서는 이 상을 ‘1년에 몇 개나 받은 좋은 회사’라고 포장하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도 이 어워드에 부끄러운 기억이 있는데,
게임회사에 다닐 때 내가 만든 사이트가 최우수상을 받게 됐고, 부문 대상도 아닌 부문 최우수상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직접 상을 받으러 잠실까지 갔고 촬영한 사진이 홍보 기사가 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검색하면 그 사진이 나온다. ( 이 당시는, 아직도 그렇지만 어워드 수상은 기업의 홍보팀에는 보도자료 돌리기 좋은 그런 건이었다. )
나는 왜 요새도 입지 않는 정장을 어릴 때 그렇게도 입었을까. 사진 좀 스타일리시하게 찍고 올걸 후회한다.
회사에는 에이젼시에서만 받는 상을 자체 기획/디자인으로 받아왔다고 자랑하고 포장했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에이젼시들이 1년 동안 했던 프로젝트를 올리고 평가받는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고, 당시 회사에서는 그 덕분에 연말에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몇 년이 흘러 모바일이 대세가 되고 나서 앱 어워드라는 상이 추가로 생겼다.
당연하지만 웹어워드는 웹을, 앱 어워드는 앱을 평가해서 주는 상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 상을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소속했던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했던 에이젼시에서 앱 어워드에 제출하면서부터다.
이직하게 되면서 후반부에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거의 실패에 가까웠는데,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어 자체적으로 만족하는 좋은 완성도를 보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일반 유저의 시각에서 보기에도 많은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어워드의 가장 높은 상을 받게 되었다.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실 이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평가 기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어워드의 평가는 이 업계 사람들이 참여하는 평가위원이라는 사람들 중심으로 이뤄진다. 한데 이 평가위원의 대부분은 에이젼시에 소속된 직원이다. 당연히 더 많은 표를 받거나 좋은 등급의 상을 받는 것도 주요 에이전시의 프로젝트 들이다.
이 부분을 자세하게 알고 있던 건 에이젼시 시절 이 어워드가 너무 동경의 대상이었던 나머지 평가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위원단이 되는 건 이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은데, 신청하면 그 자격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무려 3,500명이나 평가위원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아무나 평가위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그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막일스럽게 여러 분야의 평가를 임의로 해두면 되는 것이고, 한 분야를 평가할 때 평가를 원하는 서비스의 개수도 본인이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에이젼시에서 자사 인력을 동원해서 몰표를 주는 게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때의 수상한 서비스의 평가내역을 보면 하나같이 좋은 평가들이다. 심지어 가장 문제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 마저도 미사여구를 동원한 좋은 평가글로 도배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이 어워드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상을 받는다는 게, 또 회사에서 이것을 자랑한다는 게 부끄럽기 시작했다. 홍보 거리만을 찾아다니는 홍보팀을 말리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또 6년이 지나서 비슷한 결과를 받게 되었다.
OO부문 통합대상
이번에도 소속된 회사에서 출품을 하지는 않았다. 외주를 주었던 에이젼시의 출품이었다.
정말 이 OO부문에서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정말 지금 현재 OO부문에서 가장 좋은 가치와 UX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업계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기도 하고,
한마디로 현재 정말 좋은 서비스들에 비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결과를 받은 건 에이젼시의 역할일 것이다.
이제 이 수상은 예전만큼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수상 인증을 처리하는 게 귀찮을 정도였다. ( 홍보 거리를 위해서는 결국 수상을 하긴 하겠지만. )
수년간 지켜봐 온 이 어워드는 어떻게 권위를 스스로 잃어갔을까.
첫째, 평가의 공정성이다
위에 썼던 내용이다, 인력을 동원하면 몰표가 가능하고, 매년 상을 받는 에이젼시들이 별로 달라지지도 않는다. 평가위원의 관리가 그렇게 체계적이지도 않다. 거기에 분야는 연말 연기대상 트로피 나눠먹기처럼 점점 쪼개서 늘어만 가고, 이노베이션 대상이라는 정체 모를 상은 서비스/UX를 아는 사람들이 비교해보면 왜 이 서비스가 수상했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둘째, 돈벌이 수단으로 전략한 수상 인증 제도
이 어워드의 상을 받게 되면 수상 인증을 위해 돈을 내야 한다.
'상을 받는데 돈을 낸다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아니 상을 받는데 왜 돈을 내야 하지?
이 협회가 공기관도 아닌 사기관이니 기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할 수도 있고, 상패나 상장 제작 비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해외 유명 어워드인 Reddot이나 IF Award 도 수상 인증을 받으니 그 자체만을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속내를 뜯어보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수상 인증비용이 적지 않은 데다 ( 대상의 인증비용이 1~2백만 원선 ) 심지어, 그 이상의 이노베이션 대상이나 최고 대상을 받으면 그 이상의 인증비용이 든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소속사(발주사)와 제작사를 나눠서 양쪽에서 돈을 뜯어간다. ( 물론 트로피를 따로 주긴 하지만.. ) 이 비용만 해도 상당한 수익이 될 것이다. 심지어 이 비용을 내지 않으면 수상 자체가 취소되는 촌극이 빚어질 때도 있었다. ( 요즘도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
셋째, 수년째 그대로인 웹사이트와 인증 시스템
UX의 상당 부분을 평가하는 어워드의 웹사이트 답지 않게 구색이 궁색하고 오래된 웹사이트 구성이다. 십수년째 변화도 없고, 낙후되어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심지어 트로피 / 상장 / 인증마크 등도 몇 년째 돌림으로 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5년째 연혁조차 업데이트되지 않는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의 웹사이트는 전문가 협회라는 이름마저 궁색하게 느껴진다.
넷째, 의미도 구색도 없는 시상식
코로나 때문에 행사 자체가 불가능한 현시점에는 당연한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이 시상식을 참석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수많은 업체 대표가 호텔에 모여 자신들의 상을 기다린다. 이와 동문일 뿐 인 트로피와 상장을 주는 그 과정을 수십 번 거치는 게 이 행사의 전부이다. 그나마 행사처럼 느끼게 해 주는 건 듣보잡 가수의 공연 정도랄까. 그나마 최근 몇 년 전에 새로 시작된 '&어워드' 좋은 프로젝트의 경험을 안내하는 토크 샤워 같은 강연이라도 있지만, 이 행사는 그마저도 없다. IT강국이라며? 연예대상 같이는 어려워도 10분짜리 로또 추첨 방송 정도는 할수 있지 않나?
이 업계의 의미 있는 어워드가 생기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현재 어워드가 가진 문제점들을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이 업계에서 인정받는 인사이트를 가진 전문가로 평가 위원을 구성하고, 출품 기반이 아닌 모든 서비스를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고, 선정된 수상작은 희소성을 가지도록 분야별 소수로 선정하되, 정부기관의 협조를 통해 모든 제반 비용을 받지 않고 인증비용을 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상금을 주는, 그리고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나 시상 행사는 권위 있고 의미 있게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나는 대로 써봤지만, 우리나라의 IT 환경에서 너무 무리한 기대인 것 같다.
어차피 더 이상 고객은 어워드 인증마크를 보고 그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이젼시 업계에 잔재처럼 남은 그들만의 자랑일 뿐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의 평가는 의미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은 모르는 디테일 속의 감동 코드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어떤 어워드가 아니라 IT 또는 UX 커뮤니티에서 더 발견할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