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결국 본질이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PO(Product Owner)
언젠가부터 많은 회사의 포지션에 포함된 새로운 직무입니다.
이제 PO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부를 때는 '피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개념이 최근에 나온 것도 아니고, 브런치에서 검색만 해봐도 많은 글이 있기 때문에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제가 직접 겪고 있는 사례를 Uxer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PO 체계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회사는 토스와 쿠팡이었습니다.
쿠팡에서는 해당 포지션의 인재를 영입할 때 mini-CEO라는 개념이라는 걸 어필하더군요. 그만큼 빠른 의사결정의 권한까지 일부분 주어지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이 PO 체계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티몬/위메프/직방/여기 어때 등등 많은 회사에서 이 체계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현대카드 같은 선도적인 카드 회사들에서 이런 체계를 시도하기 시작했죠.
회사마다 이름이 조금씩 달라 PM ( Product Manager ) 하는 경우들도 있는데,
단, PM이라는 표현은 Product Manager와 겹치기 때문에 최근에는 PO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PO는 새로운 직군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PO의 일이 아예 새로운 일이라고만 보기는 어렵고 업무 체계의 변화에 따른 Role과 직무명의 변화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얼마 전까지 조금은 일반적이었던 방식은
현업부서의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요건을 내고 정책을 수립하면
이것들을 UX기획자 / Uxer 담당자들이 설계 문서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툴은 PPT가 대부분이었지만 Axure나 sketch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디자이너는 UX 디자이너 또는 GUI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획의 산출물을 디자인 산출물로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뒷단의 퍼블리싱 - 개발이 붙는 프로세스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변화된 롤을 살펴보겠습니다.( 회사마다 다르니 차이는 있을 수 있겠습니다. )
- PO는 기존 현업단의 비즈니스, 서비스 기획과 UX 기획이 담당하던 UI 기획/고객 경험 설계 부분까지 모두 진행하게 됩니다. 하나의 서비스를 정책 단과 컨셉 단에서 고민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고객에게 전달되는 경험과 프로세스를 모두 작업하게 됩니다.
- UX라는 네이밍은 이제 고객 리서치나, 선행기획 위주의 레벨로 세분화 되게 됩니다.
UX가 이 업계에 처음 보편화될 때 UI와 묶여 UI/UX라는 개념이 되기 전까지는,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동선을 추적하는 아이트래킹이나, 화면에 어디를 많이 터치하는 heat map 같은 행동/심리학적 지표를 찾는 일로 많이 불려 왔습니다. 그 이후 고객의 서비스 이용 동선이 다양화되고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경험이 중요하다 보니 UI/UX라는 말이 보편화되었고, 자연스럽게 UX 기획 또는 UI/UX 기획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UX 기획 직무의 상당 영역을 차지하는 UI 기획 부분은 PO에게 넘어가는 그림입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Tool에 있습니다.
UX툴이 발전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는데 sketch나 adobe xd 같은 툴을 쓰다 보면 UI기획자가 아니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UI설계가 가능해졌습니다. figma가 대세가 되면서 이런 흐름은 어느 정도 절정에 이르렀다고 보입니다. 또한 애자일 프로세스가 도입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UI기획서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PO 또는 현업이 직접 그린 설계로 디자인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 오히려 UX기획자가 있을 때는 UI/UX의 디자인 기획(디자인 방향성을 고민하고 UI를 잡는 업무)이 기획자에게 일부 롤이 있었다면, 이런 롤의 대부분은 디자이너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설계대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앞단의 실무에 투입되어 더 많은 영역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과거에는 현업 - UX 기획 - UX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였다면,
현재는 PO -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체계의 문제도 많습니다.
- 가장 큰 문제는 UI/UX 기획의 퀄리티입니다. (해외에는 없는 직무임에도) UX기획자가 나름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비즈니즈의 집중하는 현업들이 만든 문서로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없었기에, UX기획자들이 트렌드에 맞는 UI 기획/고객을 배려하는 디테일한 프로세스 설계/개발단을 이해하는 디스크립션을 달아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PO가 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넓은 만큼 기획서 작성에 역량을 올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기획 산출물의 퀄리티는 떨어지게 됩니다. 애자일한 문화가 있는 회사에서는 포스트잇에 쪽대본처럼 요건이 내려와서 개발까지 이어진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형상을 관리하는 정책서와 기획서는 부실해지게 됩니다. 이는 담당자가 교체되거나 새로운 정책을 추가하기 위해 기존 정책을 확인해야 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과거 기획자가 제대로 없던 시절 사람에게 의지하는 ( 이른바 구전으로 전해지는 ) 형태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 디자이너의 부담이 늘어나게 됩니다. 디테일한 기획이 필요한 서비스들의 경우 PO가 모든 것을 그릴 수 없으니 다음 담당자인 디자이너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떠안게 만듭니다 애자일이니까 초기부터 들어왔으니 내용을 다 알지 않냐, 그대로 그려달라는 요구에 부딫이게 될 것입니다.
- 벤처회사로 출발하여 회사가 초기부터 PO를 가지고 출발했다면 무리가 없지만, 애자일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PO를 처음 만드는 회사라면, PO를 하는 사람의 업무 변화가 쉽지 않습니다. 현업은 하지 않던 UI 기획을 배워야 하고 UX기획자들은 비즈니스를 배워야 합니다. 이미 수년 이상 이 업의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다른 분야를 배우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프로세스 변화를 하는 회사에서는 많은 퇴사자를 유발합니다.
- 외주로 많이 UX업무가 수행되는데, 막상 외주를 담당하는 에이젼시에서는 체계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합니다. 에이젼시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기획단은 보통 '컨설팅' 조직을 두기 때문에 PO 체계로 전환하려면 컨설팅 담당과 UX 기획담당을 합쳐서 PO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규모의 에이젼시가 아닌 이상 인력 구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을 하는 에이젼시의 특성상 이 변화는 매우 도박적인 부분입니다.
오히려 애자일 문화를 하는 회사들은 외주를 쓰기보다는 많은 인력을 자사에 두게 되고, 에이젼시가 업무를 수행하는 많은 회사들은 기존의 업무방식을 아직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또한 인력이동이 많은 에이젼시의 환경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변화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한 비즈니스 관여도가 현업만큼 높지 않은 업의 특성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PO 체계를 많은 회사에서 선택하는 건 왜일까요
- 먼저 애자일 프로세스에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업무 프로세스 상의 하나의 단계를 없애는 건 산술적인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효율입니다. 문제점이 있더라도 업무 속도와 효율성의 향상은 경영진에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 이른바 네카라쿠배당토야라고 부르죠. 그 외에도 최근 IT를 이끄는 많은 회사들이 이 체계를 쓰고 있다 보니 , 자연히 이 흐름을 따라가게 됩니다 (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반대 의견인데, 항상 회사의 본질과 상황을 모른 채 체계를 바꾼 회사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원래대로 돌아가곤 해왔습니다. )
이 PO체계를 잘 돌아가게 하려면
- 권한 이양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 PO체계는 애자일한 업무 방식과 연결성이 있습니다. 쿠팡이 실제로 mini-CEO의 권한을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콘셉트상은 맞는 방향이라고 보입니다. 기존에 회사에서 top-down방식으로 일을 해왔다면, empowement를 통해 PO들에게 권한을 양보해야 합니다. 이 것이 기존 CEO나 임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체계의 변화는 구성원들에게만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부의 관리자들도 변화해야 합니다.
- 구성원 간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일전에 Sketch/XD 도입의 글(https://brunch.co.kr/@creativeuxer/8)을 썼을 때도 그랬지만, 업무 방식의 변화는 모든 구성원 간의 합의를 통해 시기, 절차, 방식 등이 면밀하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퇴사자를 유발하게 되기도 하고 머지않아 원래대로 돌아가게 됩니다.
UX기획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사실 PO 체계의 변화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포지션이 UX 기획입니다. PO로 업무를 전환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또는 원래의 일을 유지하고자 이직을 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변화에 따라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업계의 업무 방식은 고정되어 있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웹 시절 웹 기획에서, 서비스 영역단의 일을 겸하면서 웹서비스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던 시절도 있었죠. 또한 모바일 / UI / UX 등 다양한 타이틀을 '기획자'라는 타이틀 앞에 붙여왔습니다. 이번 변화도 사실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본질'입니다.
자신에게 중요한 타이틀이 'UX'인지 '기획'인지 명확히 고민해보고 UX가 본질이라면, 선행 기반의 UX(보통 PO체계를 하더라도 UX를 이 영역에는 남겨두기도 합니다.) 나 또는 디자인 쪽으로 업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기획이 본질이라면 PO라는 타이틀 하에서 더 많은 영역에서 Creative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업을 오래 할수록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원하고 추구하는지가 직무를 선택하고 변경하고 또 따라가는데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PO체계를 이야기한다면 그 관점에서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자신감을 드리고 싶은데,
현업-기획-디자인-퍼블리싱-개발로 이어지던 과거의 업무 흐름에서 해외에는 기획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말을 하죠.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데요. 해외와 우리나라는 업무 환경이 다릅니다. 단기간에 빠르게 높은 퀄리티의 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획자들은 그동안 전체적인 산출물을 관리하는 사실상의 PM 역할을 하기도 하고 communicator 또는 coordinator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은 PO체계에도 분명하게 도움이 되는 기반 역량이 될 것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애자일이 대세가 될지, 기존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대세가 될지 또는 Full-Stack이 대세가 되는 또 다른 방법론이 나올지.
하지만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그 고민을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고민하면서 더 좋은 방법들을 찾아나간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우리는 더 좋은 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고민의 하나가 되고자 글을 썼습니다. 또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