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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 jakka Sep 15. 2018

유언장

내 인생의 사과나무

이 글은 죽음과 인생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글입니다. 죽음에 반감이 있으신 분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권해드립니다.


제가 살면서 이때만큼 죽음을 가까이 느낀 적이 있었을까요. 약 2년 6개월 전. 무대 위에서 점프, 착지, 퍽! 의 순서로 저는 쓰러졌습니다. 주저앉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다음 날 MRI 검사 후 무릎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의사 선생님을 째려봤습니다. 그런데 뭐 째려본다 한들 변할 것이 있겠습니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이 없었습니다.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후회가 더 컸습니다. 그 후 회와 수술과 몇 달간의 재활은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최근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것마저도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저 자신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언제 죽게 될까? 영원히 살진 못할 테니까. 죽긴 죽겠지?

그런데 나중이 아니라 만약 다음 주에 죽는다면? 지금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주에 정말 죽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 마세요. 자살은 아니니깐요. 자살하기엔 인생이 너무 재밌잖아요. 할 것도 많고. 사실 여행을 몇 달 전부터 계획했는데, 지금 그곳에 자연재해가 심하다고 해요. 자연재해는 제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깐요. 그러면 안 가면 되지 않냐?라고 묻는 분들이 계실 수 도 있겠지만 Follow my heart. 가슴이 시키는 대로 운명에 저를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정말 만약에 다음 주에 죽게 된다면? 지금의 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인생의 마무리는 해야겠다 싶어 유언장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글에 찾아보니 유언장 서식도 있던데, 죽을 때 까지도 정해진 틀에 맞춰 죽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무언가 반항심 같은 것도 생겨서 그냥 내 마음대로 유언장을 작성해볼까 합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이 지척에 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항상 예고된 상태로 오지 않습니다. 예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다음 주에 죽음이 올 수 도 있다고 예고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요. 암튼 내 인생의 사과나무가 무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바로 가족, 친구, 건강, 예술, 성장입니다. 유언장을 남깁니다.



가족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자퇴 이유가 좀 이상할 수 도 있는데, 갑자기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B-Boy만 하던 제가 변했던 거죠.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신성적이 부족해서 고등학교를 자퇴 후 대입검정고시를 봤습니다. 그때 부모님은 자퇴를 하지 않으면 어떠냐며 저를 두어 번 설득했었는데, 저는 10년 계획서를 제출하면서까지 제 자퇴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어느덧, 저는 경영학과 학생이 되어 있었고 그때 부모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네가 자퇴 이야기를 꺼냈을 때 힘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너를 안 믿어주면 누가 너를 믿어주겠니’라는 생각으로 자퇴 도장을 찍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감사합니다. 저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그분들이 있었기에 참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데 내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된 적이 있나 하고 질문해보니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마냥 눈물이 납니다. 더 잘 해드릴걸 그랬습니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친구들

 머리에 생각나는 그룹을 쭉 나열하자면, 뮤지컬 시카고, 24K, 호재호국(이태원 패밀리),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그리고 우리 경리단과 금리단길 우리 자매님들(사실 내 클럽 친구들). 이 분들이 요즘 내가 최근에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내 친구들입니다. 친구라고 해서 나이가 비슷하진 않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적을 수 도 있는데 나이를 떠나서 편하게 만날 수 있고,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그대들이 있어서 제 삶이 더 넉넉해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 적진 못했어도 제 삶의 한 조각조각을 함께해준 내 친구들 너무 고마워. 만약 다음이 있다면.


건강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저는, 운동을 생활로 만들었죠. 어렸을 때부터 운동습관을 만들어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와 헬스클럽에 같이 다니던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태권도, 검도, 합기도, 복싱,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요가, 필라테스, 헬스. 이 운동들이 저를 만들었던 것들인데요. 다시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벌써 근질거립니다. 만약 다음이 있다면.


예술

 음악아. 하루 시작과 마무리를 너와 함께해. 믿거나 말거나 나는 그렇단다. 마치 공기 같은 거지.  음악 같은 공기. 공기 같은 음악. 그런데도 내가 널 노래로 부를 때면 넌 자주 내게서 멀어졌지. 언젠간 가까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군. 정말 아쉬워. 만약 다음이 있다면.


성장

 책에 빠져서 이런저런 세상을 만나고, 상상으로 저자들을 만났던 시간들이 좋았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세상이 넓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 세상으로 더 뻗어나가고자 했습니다. 뭐가 있는지 더 궁금했습니다.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데. 이렇게 끝으라니. 그래도 고마웠다! 넓은 세상 조금이라도 구경시켜줘서. 만약 다음이 있다면.


휴. 유언장 끝.  슬픈 음악 틀고 감정이입하며 글 쓰고 있는데, 이 글을 작성하는 내내 기분이 좋진 않습니다. 원래 글 쓸 때는 재밌어서 쓰는데 말이에요. 예고한 대로 된다면 이 글 또한 마지막이 될 수 도 있으니깐요.


하지만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저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하워드 진의 말처럼

제게 절망할 권리는 없겠죠. 해야 하는 건 하나. 희망을 고집하는 것. 
살아돌아오길 희망하며. 
그 어느 여행보다 기억에 남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사과나무를 다시 키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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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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