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잃어버린 10년에 대하여
이 글은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읽어버린 10년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재미없을 수 있고 어쩌면 어떤 글의 연장선이거나 또는 그 글의 다른 버전 일 수 도 있다. 그 글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잠시 다녀오시길 권한다. 바로 그 글의 제목은 '나는 실패한 배우다'.
https://brunch.co.kr/@creatjun/32
나란 아이에 말해보면, 호기심이 많고 즉흥적인 부분이 많다. 어느 정도냐면 시간을 내어 이런저런 곳에 자주 찾아다니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도 물론이고 모임도. 장소는 내가 전혀 안 가본 곳을 가는 것을 좋아하고, 평상시 다니던 익숙한 목적지를 가더라도 평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목적지에 향하는 걸 즐긴다. (써놓은 글 중에 '재밌게 출퇴근하는 법'이 있다. 언제발행하지.) 그리고 독서모임, 단체로 운동하는 그룹 액티비티 모임 심지어 아침 7:30에 하는 비즈니스 커피 모임도 갔었다. 왜? 글쎄다. 그냥 호기심이 여기저기 많다. 나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으나 이게 나다.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자기를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인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무대 위의 배우로서의 자기소개가 아니라, 무대 아래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기소개를 한다는 건 나에겐 참 쉽지 않다. 사실 명함이 있다면 자기소개가 쉽겠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나를 소개할 때 대부분 이렇게 '안녕하세요. 예술 쪽에 종사하고 있는 전호준입니다.' 라고 말한다. 사실이고 너무 많은 정보를 준 것도 아니고 딱 이만큼. 딱 저 정도의 소개를 좋아한다. 그럼 대게는 '아. 그렇군요' 하고 마무리되지만 가끔 나처럼 호기심 가득한 그룹을 만나면, 그들은 눈동자를 키우며 '어떤 예술이에요?라고 묻는다. 그럼 난 그제야 '뮤지컬 쪽에서 일해요. 배우예요.'라고 소개를 하는데, 그럼 으레 돌아오는 질문은 대게 이러하다. '우와! 신기해요! 그럼 노래 잘하시겠네요?'. 난 으레 이렇게 대답한다.
아. 저는 노래 좋아해요.
데뷔 전부터 뮤지컬 동아리에서 성악과 형들을 통해서 어깨너머로만 노래를 배웠던 나. 데뷔 후, 노래를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이어서 공연을 하는 중에도 레슨을 계속 받았다. (사실 아직도 받고 있다. 죽을 때까지 받겠?) 노래 레슨은 새로운 선생님을 찾거나 여행을 갈 때를 제외하곤 쉰 적이 없다. 약간 공기 같은 느낌이다 나에겐. 노래를 10년 넘게 배웠다. 하지만 나는?
왜 아직 이 모양인가?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짜증이 내 온몸을 휘감아돌았다. 그런 감정들이 내 몸을 한번 휘몰아치면 바닥이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나란 아이는 작아졌고, 낮아졌고, 가라앉았다. 바닥이 어디인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딱 그것이었다. 그래도 내 이중생활(배우를 하며 노래를 배우는 생활)은 계속되었다. 다른 어떤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약 4년 전 맘마미아라는 공연 중 십자인대 끊어졌는데(생각해보면 그날도 아침 8:30에 노래 레슨을 받고 극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노래가? 실력이? 십자인대와 노래의 상관관계를 찾아서 '십자인대가 끊어지면 노래를 잘하게 되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책을 읽기 시작했단 것이다. 책 속엔 다양한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내가 공연하던 무대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신기했다. 정말 다양한 세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다양함을 알고 싶어 분야 상관없이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고나 할까. 그 때의 나를 표현하면 호기심X호기심 정도 될 듯. 일년에 100권은 기본이었고, 정말 많은 책을 샀고, 알라딘의 BORN TO READ 신용카드도 만들고. 그땐 그랬다. 노래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을 읽은 후, 나는 내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도 배웠다. 그렇다. 나는 노래를 책으로 배웠다. 노래를 책으로 배우다니? 다시 이야기 하면
책을 통해 고민하는 법을 배웠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고, 연습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은 후, 노래(또는 노래 배움)에 대해 바뀐 몇 가지 생각이 있다. 그 주인공은 재능, 잠재의식, 연습과 레슨이다.
재능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네이버 사전)
재능. 재능? 재능! 노래를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배우인 나. 재능이 있는가? 재능이 없는가? 재능이 중간 정도인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말하고 싶은 것은 노래와 재능의 상관관계이다.
노래를 잘하려면 타고나야 할까? 아니면 노력으로 가능할까?
(꼭 마음속으로 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예술을 한다면 당신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 만약 그렇다면 얼마의 재능인가? 일을 할 만큼의 재능인가? 아니면 대단히 성공할 재능인가?
난 이 부분에 전혀 의심이 없었다. 난 내가 재능이 있다 라고 생각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댄서로 오디션 합격 후에 코러스 오디션에도 합격한 나 아닌가. 그때 파리(미국인가?)에서 온 음악감독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나 아닌가. 그런데 그 후로의 나는? 그럭저럭 공연을 할 정도의 수준은 되었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내 재능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 분의 선생님께 약 3년 정도씩 배웠을 때를 생각해보면, 각 배움에 실패했을 때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어? 내가 재능이 없나? 어라?'
재능은 과대평가 되어있다. 책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alent is overrated)]보면 그 와 관련된 예들이 많이 나오는데,
최고의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이 갖춘 재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재능과 전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재능으로는 그들이 이루어 낸 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최소한 그런 재능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특별히 누군가에게 탁월한 재능이 주어진다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당신은 천부적인 클라리넷 연주자도, 자동차 세일즈맨도, 증권 거래인도, 뇌신경외과 의사도 될 수 없다. 그렇게 타고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천부적 재능이 위대한 성과를 달성하는데 특히 중요하다는 주장을 입증하느라 몹시 힘겨워하고 있다.(P 16)
천부적 재능이라는 특별한 경우에 대한 의문은 제쳐 두더라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추었을 법한 일반적인 능력들조차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체스나 음악, 비즈니스. 의료 기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지적능력이 뛰어고 기억력도 놀라운 수준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아마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체스 마스터들 중에는 지능지수가 평균 이하인 사람도 있다.(중략) 그런 일반적인 능력에서 그들은 대부분 믿기 힘들 정도로 평범하. (P 17)
재능과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서 재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재능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나. '그래, 난 재능이 있는 아이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재능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책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alent is overrated)]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연습과 레슨
연습이란 학문이나 기예 따위를 익숙하도록 되풀이하여 익힘(네이버 사전)을 뜻한다. 책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alent is overrated)]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그동안 날 이끌어주셨던 선생님들과 과거의 나 자신에게. '그 많은 선생님들 중 왜 어느 누구도 연습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지?' 열심히 하면 된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노트르 담 드 파리 공연 중, 성악을 처음 배우고 노래가 막 늘고 있을 당시 가곡을 즐겨 불렀는데, 아리아가 너무 웅장하고 폼나 보여서 아리아를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께선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난 잘못된 연습의 길로 빠졌다. 안전영역에서 바로 공황 영역으로 넘어갔던 것(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아래 나온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배움을 할 당시에 왜 비판적인 생각이 없었는지'. 모든 걸 왜 선생님들께 맡겼는지.
책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Talent is overrated)]을 통해 보니 프로들은 연습법이 달랐다. 그건 바로 '의식적인 연습'. 말 그대로 의식적으로 연습하는 것인데.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은 성과 중에서 특별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특정 부분을 예리하게 찾아내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위대한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는 트릴 연습에만 아주 오랜 시간을 연습했다.(중략) 타이거 우즈는 벙커 모래에 골프공을 놓고 제대로 치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위치에서 샷 연습을 했다. 위대한 성과자들은 자기가 하는 활동의 전 과정에서 특정 부분만 따로 떼어 그 연습에만 집중했다. 그 부분의 실력이 향상되면 다음으로 넘어간다. (P 109)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의 노엘 티치는 세 개의 동심원으로 이 기술의 핵심을 설명했다. '안전영역', '성장영역', '공황 영역'. 성과향상은 성장 영역에 포함된 활동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계를 넘어선 기술과 능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안전 영역에서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이 영역의 활동들은 이미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황 영역이 활동들은 너무 어려워서 접근 방법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성장 역역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식별한 후에는 그 영역이 바뀔 때까지 스스로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이것이 성장 영역의 핵심이다. (P 109)
타이거 우즈가 태어났을 때 그(우즈의 아버지는 골프광이었다.)는 이렇게 밝혔다. "난 제대로 훈련받았고 이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타이거에서 골프를 가르쳐서 신세계를 열어 보일 것이다." (중략)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골프채를 똑바로 쥐고 공을 정확히 때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교습법을 개발했다. 타이거 우즈는 두 살이 되기도 전에 골프장에서 꾸준히 연습했다.(p.50-51)
이게 바로 의식적인 연습이다. 내가 가곡을 부르다가 아리아를 불렀을 때, 성장은 당연히 불가했다. 안전영역에서 바로 성장영역을 거치지 않고 공황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의식적인 연습은 프로 야수선수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하는 연습법이다. 배우인 나에게도 적용이 되며, 무언가를 배우려는 사람에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내 주변에 아이가 있는 친구나 선후배들이 '육아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하던데, 의식적인 연습은 육아보다 힘들다고 책에 나온다. 그러니 의식적인 연습을 하려면 마음 단디 먹자. 나도 마음 단디 먹고 있다.
잠재의식은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 과정. 어떤 경험을 한 후, 그 경험과 관련된 사물ㆍ사건ㆍ사람ㆍ동기 따위와 같은 것을 일시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것이 필요하면 다시 의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이른다.(네이버 사전)
잠재의식이라고 하면 어려우니깐, 난 잠재의식을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노래를 제대로 '처음' 배울 당시에 내 마음의 소리는 이러했다. '만약 내가 뮤지컬에서 앙상블로 그만두게 되더라도, 공연 하기에 부족함 없이 노래하자.' 정말 딱 이렇게 꿈꿨는데 딱 말하는 대로 되었다. 하하하. 웃픈 상황. 지금은 잠재의식을 완전히 바꿨다. 새로운 마음의 소리로.
그 잃어버린 10년, 그 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이 바닥에 존재하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가 아직도 스토리를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또 내가 단무지이기 때문이다. 짧게 말해 단무지. 단순, 무식, 지랄의 축약어. 어렸을 적, 친구들과 저 단어를 즐겨 썼는데, 성인이 된 후에도 저 단어는 내 의식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나는 막 열심히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단무지였기 때문에 살짝 멀리 돌아왔지만 단무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내 심장이 떨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에 실패한 듯 보이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배움이라는 것에서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사시길 바란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움을 계속해야 하니깐. 우리 모두 배움은 피할 수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에서 토티의 짧은 대사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인생이나 풋볼이나 1인치씩 앞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그 1인치 차이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냐에 따라 거기서 승리와 패배가 갈라진다. 승리와 패배의 차이는 결국 1인치 차이다. 우리는 오직 1인치를 위해 달린다.
덧붙임> 아래의 영상은 연습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난 후( 약 10프로 정도?)부른 영상이에요. 즐겁게 감상하세요. (박찬양 배우와 함께 했습니다.)
덧붙임 2> 재능과 배움에 대해 추천하는 책으로는 [배우는 법을 배우기], [그릿], [재능을 단련시키는 52가지 방법], [하비 페닉의 리틀 레드북] 등이 있다.
덧붙임 3> 댓글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진짜예요.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3JdjiHQQ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