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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 jakka Jan 10. 2019

난 어떨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외웠던 첫 대사

난 어떨 거라고 생각하세요?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배우 지망생 시절에 외웠던 첫 대사. 이 얼마나 시적이고 멋진가.


요즘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내 연기 경력은 화려하지도 않고 무대 경력 또한 그렇게 길지도 않지만, 배우 지망생 시절 받았던 연기레슨은 잊을 수 없다. 그때 내 훈련 일정은 거의 일정했다.  매주 월 수 금. 레슨시간은 저녁 7시. 레슨 이십 분 전 연습실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몸을 푼다. 그 후 동료들, 연기 선생님과 함께 신체 훈련을 한바탕 진행하며 땀을 뺀 후, 바로 이어지는 소리 훈련. 함께 레슨 받는 동료들, 연기 선생님과 교감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한 시간 반을 훌쩍 넘어간다. 그 후 이어지는 개인별 독백 대사 훈련 시간. 이 사이클은 입시준비하는 서너 달 동안 계속되었다. 내 독백 대사는 연극 [유리 동물원] 탐의 독백이었는데, 탐은 항상 반항적이고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상을 찾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그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다.

‘난 어떨 거라고 생각하세요?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엄마는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으니까요! (중략) 한 달에 65달러를 벌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꿈을 포기하면서. 그런데도 어머닌, 내가 나밖에 모르는 애라고요? 저 좀 보세요!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면 난 벌써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가있을 거예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타고 말이에요! 이젠 날 붙잡지 마세요.’

그런데 독백 대사 훈련 후 기억에 남는 건, 여기서는 올리고 이 부분에서 내리고 저기선 빨리 끊고. 나는 그때 그 잘못된(?) 연기교육으로 인해 연기라는 것에 대해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배제된 연기가 진정한 연기인가?




요즘 생각이 많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보고 새로운 사람도 여럿 만났다. 그 질문에 대해 생각이 깊어짐을 느꼈느데, 그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내가 가지고 있는 프레임이 조금씩 변했다는 사실. 또 이 프레임은 고정관념, 의식, 인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프레임에 대해 최인철 교수는 본인의 책 [프레임] 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의 시동이 기차선로 위에서 갑자기 꺼졌다.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아버지는 시동을 걸려고 황급히 자동차 키를 돌렸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기차는 차를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외과 의사가 차트를 보더니 "난 이 응급환자를 수술할 수 없어. 얘는 내 아들이야!"라며 절규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버지는 아들과 사고를 당한 뒤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던가? 혹시 의사가 친아버지이고, 야구장에 같이 간 아버지는 양아버지였을까?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의사가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읽어보라.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당신이 이 시나리오를 조금이라도 의아하게 생각했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외과의사=남자'라는 전통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 고정관념의 프레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곧바로 그 의사가 엄마임을 짐작했을 것이다. (이하 생략...) 

나는 요즘, 프레임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안경 맞출 때, 시력검사 후 착용하는 간이 안경(?)으로.(물론 이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른다)

간이 안경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프레임을 만나며, 본인의 간이 안경 앞 쪽에 프레임 옵션 하나 씩 하나 씩 끼워 넣는다. 어떤 건 사이즈가 클 수 도, 어떤 건 사이즈가 작을 수도. 하지만 그 프레임 조정은 결국 누가 해야 할까? 의사? 엄마? 아빠? 아니 아니 아니.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회의 프레임으로, 부모 또는 친구의 프레임으로 내 인생을 사는 건 아닌지. 도수가 안 맞으면  눈이 아프 듯 프레임이 안 맞으면 인생이 아프다. 


내 생각이 배제된 인생이 진정한 삶인가?




결국 우리는 내 생각이 배제된 연기, 내 생각이 배제된 인생에선 의미를 찾기 쉽지 않다. 배우가 되려면 사람이 먼저 되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되려면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배우가 아니더라고 그 어떤 역할로 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무대에 바치는 질문(https://brunch.co.kr/@creatjun/25)이라는 글에서 인용했었던 당신의 인생을 연기하라(FREE TO ACT : HOW TO START IN YOUR OWN LIFE by Warren Robertson)에서 저자 워렌 로번트슨은 이렇게 말한다.


연기자에게 단 하나의 배역이 있지 않듯이 당신 인생을 단 하나의 역할에 고정시킬 필요 없다. 말론 브란도가 어느 영화에서는 곤드레만드레 취한 노동자로, 다른 영화에서는 멕시코 산적으로, 또 다른 영화에서는 늙은마피아 대부로 나오듯이 변화는 항상 가능하다.


2019년 첫날, 글이 너무 쓰고 싶어서 쓴 후, 십 여일 만에 글을 썼네요. 새해의 좋은 기분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공유와 댓글은 호자까에게 큰 새해 선물입니다.^^ 새해 선물 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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