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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 jakka Jan 31. 2019

독서, 그 거창한 주제에 대해

전호준 X 정석헌

 깨톡! ‘이것은 반가운 카톡 소리가 아닌가. 누구지?‘ 가양 33이라는 독서모임 단카방에 제 글쓰기 친구 석헌님께서 보낸주신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최악의 독자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그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


이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이런 의견을 공유해주신 석헌님께 감사했고, 두 번째는 ‘으음?‘이라는 정체 모를 소리가 제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어요.


그럼 최고의 독자는 뭘까?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 봤는데 생각보다 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석헌님께 ‘이 소재로 글 한번 써볼까요?‘ 여쭸더니 흔쾌히 ‘그러시죠’라며 답장이 왔어요. 너무 쿨하고 좋은 석헌님.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번 글.


최고의 독자란 대체 무얼까요? 사실 전 질문 자체에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불현듯 저 글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그랬을 수 도 있단 생각도 드는데. 결국 책이란 건 저자의 생각이자 의견이며 논리잖아요, (아! 책은 도끼일 수 도 있습니다. 운명의 조각칼일 수도 있고요) 니체는 결국 책은 이렇게 봐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내 말이 다 맞다고 말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충고도 남이 듣고 싶을 때, 그 사람이 필요할 때,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해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하거나 관계가 틀어질 수 도 있겠죠. 독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독자의 세계에는 최악의 독자라는 것도 최고의 독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책 읽는 사람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읽으며, 독자로서 그 책과 그 시간에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현재의 모습들 ㅡ 거리의 간판, 모퉁이, 소화전, 신문가판대를 보고 듣고 감지해서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드리기 위해서다.

이 글을 읽고 작가의 세계만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독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독자로서, 우리가 책 속으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덧붙임> 같은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허락해주신 석헌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에는 그  어떤 비방도 담겨있지 않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시죠? 공유와 댓글은 호자까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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