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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 jakka Aug 01. 2019

날 팬텀으로 불러다오!

팬텀오브디오페라 팬텀 말고.

록키호러쑈라는 제목의 뮤지컬을 공연했다 며칠 전까지. 짧게 말해 록호쑈. 그중에서 내 배역의 이름은 팬텀! 하지만 팬텀은 나 말고도 9명이나 더 있다. 이게 뜻하는 건 팬텀도 앙상블이란 이야기이다. 뮤지컬에서 앙상블 역의 배우들은 앙상블의 프랑스어 뜻대로(앙상블(프랑스어: ensemble)은 전체적인 어울림이나 통일. ‘조화’로 순화한다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며 음악에서 2인 이상이 하는 노래나 연주를 말하며 흔히 뮤지컬에서 주, 조연 배우들 뒤에서 화음을 넣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말한다.) 주조연과 조화를 이뤄서 춤 노래 또는 연기를 하고 분위기를 돋운다. 작품에 따라 앙상블의 비중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합창과 군무를 하고, 앙상블 중 한두 명은 작은 역할을 병행하기도 한다. 앙상블이라 주조연에 비해 비중이 작지만, 앙상블 없는 무대는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프로듀서도 이렇게 말했다.


앙상블은 그 자체로 무대의 기둥이다.


다시 말해 앙상블도 공연에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다. 기둥 없는 아파트 상상이 되는가? 다만 주조연과 앙상블은 무대 위에서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하겠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이렇게 록호쇼의 기둥(?)으로 보낸 지난 시간 동안, 팬텀으로서 뭘 했는지 생각해봤다.


1. 공연 전, 로비쑈를 나간다.

남자팬텀들은 공연 전에 로비에 나가서 관객 분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공연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예를 들면 롯데월드 퍼레이드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객분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관객분들의 소품을 활용해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남자 팬텀 5명은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캐릭터 해석은 다 다르기 때문에 로비쇼에 하는 행동들도 다 다르다. 영오 팬텀은 쓰레기통 옆에서 쭈그려 앉기도 하고, 캡틴 팬텀은 사진 찍어달라는 관객분들을 외면하기도 한다.) 이 로비쑈라는걸 처음 할 때는 쉽지 않았다. 일반적인 공연보다 공연 준비도 빨리해야 하고, 공연시간이 늘어난 느낌이라 적응이 쉽사리 되지 않았다. 하지만 로비쇼가 즐거웠다. 로비쇼를 하면서 느낀 건, 공연 전에 관객분들께 긴장을 풀어주는 아이스 브레이크 느낌이었고, 관객분들과 사진도 찍고, 그분들의 웃음을 보면 팬텀으로서 재미도 느끼고, 공연에 대한 책임감도 느꼈다.


여자 팬텀들은 공연 전에 객석에서 관객분들께 Time Warp 넘버에 나오는 춤을 가르쳐드리기도 하고, OP열 관객 분들께 빵을 놔눠드리기도 한다.  그 빵은 가짜빵인데, 공연 중간에 무대 위의 배우들이 브레드 역에게 빵을 던질 때, 관객분들도 브레드에게 빵을 던질 수 있다.


2. 한여름이라 무더울 수 있으니 시원하게 비도 뿌려드린다

브레드가 운전하는 차가 길을 잘 못 들어서, 결국 브레드와 자넷은 방금 전에 지나온 성을 찾아 걸어가는데, 이때 비가 내린다. 관객 분들께 그 비를 제공하기 위해서 최신식 기술을 사용하여 천장이나 벽에서 비가 내리면 좋겠지만, 이 때도 팬텀들이 등장한다. 물통을 짊어지고 객석으로 내려가서 비를 몰고 다닌다. 팬텀을 도발하면 국지성 장마가 될 수 도 있습니다.

 

3. 그 외에도

자동차의 바퀴나 안전벨트가 되기도 하고, 결혼식 하객도 되고, 프랑크퍼터의 하인도 된다. 공연을 보신 분들을 알 것이다. 별걸 다한다. 그게 팬텀의 운명이다. 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아. AMOR FATI 하니깐 생각나는 게 있는데, 이번 시즌 팬텀으로 공연하면서 몇 번의 작은 부상을 입었었다. 그 부상 목록을 간단히 나열해보자면


첫공날 왼쪽 발바닥에 아주 약간의 실금

공연 초반에 롤러 스케트를 신고 계단에서 넘어져서 왼쪽 허벅지에 아주 큰 멍! 심지어 동료 배우도 위험하게 만듦

그리고 중후반에 허리 통증


대략 이렇게 3가지인데, 사실 내가 다 케어할 수 있는 정도의 부상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의 일이 이렇다. 무대의 기둥으로 살아가는 거 쉽지만은 않다. AMOR FATI.



공연 중 후반 부 쯤일까? 어느 날 문득 궁금했다. 우리는 왜 팬텀으로 불릴까? 우리의 이름이 팬텀이어야 하는가? 사실 앙상블이라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그런데 머리 속 뉴런 어딘가에서 명명철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니


1936년 <조선문학> 7월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이름’을 소재로 하여, 이름의 존재 의의와 중요성을 철학적으로 탐색한 수필가이자 독문학자인 청천(聽川) 김진섭의 수필이다.  


이렇게 나온다. 음. 이름에 존재의 의의와 중요성을 철학적으로 탐색하다. 그렇다. 사실 팬텀을 앙상블이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팬텀이라고 칭해주니 사실 공연하는 한 배우의 입장으로서는 큰 힘이 되었다. 만약 앙상블이라고 했어도 내가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물을 뿌리고 춤을 추고 합창을 하고 리액션을 했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니 그 어떤 사명감과 책임감이 생겼다.


공연 이야기, 부상 이야기, 명명 철학이야기 그래서 이 글의 주제가 뭐냐고? 미안하다. 주제는 없다. 그냥 주저리주저리. 십여 년 넘게 공연하면서 내 최애 작품은 당연코 뮤지컬 시카고와 뮤지컬 킹키부츠인데, 이 록호쑈는 뭐랄까. 갑자기 앓게 된 사랑이라고나 할까. 후회 없이 순간에 살았다.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헤어졌다.



이 글은 2019년 뮤지컬 록키호러쑈에서 팬텀으로 공연하며 느낀 것들을 적은 것으로, 다른 배우들의 해석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히며, 특히 제작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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