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글 5_인간관계는 삶이다
오래전 직장에서 만나 25년 넘게 친구처럼 지내는 선배가 있다. 나는 간호사, 언니는 임상병리사였고, 우리는 띠동갑이지만 친구 같고, 가족 같은 관계이다. 올여름 즈음,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잘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언니, 우리가 이렇게 오래 만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우린 이해관계가 없잖아.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니까. 특별히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으니 그냥 너로서 충분해. 그리고 말이야, 우리는 서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잖아.”
우리는 서로 인연의 끈을 잡고 있었다. 연락이 자주 닿다가도 뜸해질 때가 있었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도 다시 전화를 걸면 늘 그대로였다. 마치 어제 통화한 사람처럼 오늘의 안부를 묻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를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 마음의 경계를 두거나 더 많은 마음을 내주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없었다. 우리는 상황에 맞게 눈치 보지 않고 유연하게 소통했다. 졸리다, 지금은 바쁘다, 배고프다 등의 이유로 전화를 끊어도, 그 상황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었다. 다시 전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부담도 없었고, 그저 편안한 때에 다시 전화를 걸면 그만이었다.
언니는 성격이 좋아 누구와도 잘 지낸다. 그래서인지 멀어진 많은 지인들 중에 아직도 내 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언니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존중과 함께 진심 어린 공감을 해 준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심리학자 폴 블룸은 <<공감의 배신>>에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겠다고 하면서, 실은 자신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삶을 제멋대로 휘젓거나 억지로 자신의 신발을 신기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되돌아보면, 우리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게 자신의 신발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에게 존중과 공감, 그리고 안정감을 느꼈다. 이러한 관계는 인간적 존중에서 비롯된 신뢰로, 관계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