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행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by 금다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가수 남진 씨의 히트곡 중 하나인 '님과 함께' 가사 중 일부다. 이 시간에 그것도 월요일 아침부터 왜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검토할 자료가 있어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는데 정작 자료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갑자기 이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아무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망신살 제대로 뻗칠 뻔했다. 정말 이상한 날이다.


이 곳 조치원은 내가 발령받기 전까지는 낯선 곳이었다. 대전역에서 조치원역까지 기차를 타도 20여분 거리이고 승용차로 달려도 한 시간 이내의 가까운 곳이었는데도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2012년 지방청 근무할 때였다. 순회교육을 왔을 때도 지금처럼 4월이었던 거 같다. 이때가 처음으로 조치원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경찰서 옆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더니 복숭아나무가 과수원 가득 심어져 있었다. 그 나무마다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분홍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 보는 이마다 눈호강을 한다고 좋아라 했다. 그때는 몰랐었다. 이 곳이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것을.


조금 더 위로 걸어 올라가자 길 건너편 과수원에는 배나무 꽃이 하얗게 피어 지나는 이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어렵게 걸음을 돌려 경찰서로 향하는데 오르막길 옆의 잘 지어진 전원주택 정원석 사이사이에는 진달래꽃이 영산홍과 어울려 피어 있었다. 경찰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3층 대회의실에 임시로 만든 간이 교육장으로 가는 복도 옆에 테라스가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니 마침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있는 넓은 들판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마주한 이곳의 풍경에 반하고 말았다.




girl-4142846__340.jpg pixabay - 어린 시절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직장 따라 시골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침이면 닭울음소리에 맞춰 눈을 뜨고 몇 되지 않는 동네 오빠들을 따라 뒷산에 올라가곤 했다. 웃옷을 벗어 보자기 삼아 진달래 꽃잎을 가득 따와 시냇가 돌다리에 줄지어 앉아 발로 물장난 치며 꽃잎을 나눠먹으며 놀았던 기억, 저녁에는 저수지 수면에 이는 잔물결과 그 위를 물들이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골 장날이면 읍내 시장에 가기 위해 엄마의 손을 잡고 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가며 엄마와 함께 부르던 동요 '고향의 봄'도 생각난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고향의 봄'을 부를 때면 유난히 '아기 진달래' 구절을 좋아했던 나. 오늘은 누가 들을까 봐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유년시절의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나만의 예우(禮遇)였다. 이처럼 나에게는 시골에서의 아련한 추억이 있었기에 그날의 순회교육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움만 커져갔다.


그 해 가을, 나는 바라던 대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이곳으로 발령을 받아 왔지만 순회교육을 왔던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정부 세종청사와 신도시 건설 등으로 인하여 세종시 전체가 들썩거렸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에게 물어오는 것은 '아파트 분양'이었다.


현대에서 부(富)를 축적하는 방법 중 부동산 만한 게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IMF, 카드 대란 등을 겪어오며 그 중심에 있었던 나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비어내는 기쁨' '내려놓음'을 먼저 알았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하루하루 정년(停年)이 가까워지고 있는 내게는 그저 불어왔다 사라지는 바람처럼 잠시 인연이 닿았다 스치고 지나가는 곳으로 만족한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난 옛날 사람인가 보다.


점점 머리색도 희끗희끗해져 간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가슴속이 따뜻해지는 유년시절을 보내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아플 때 남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기쁠 때 남에게 베풀 줄 아는 그런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거야말로 고달팠던 우리네 인생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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