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찬 바람을 피해 창가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 따뜻한 공기가 열린 창틈을 비집고 내 옆으로 다가와 수줍게 웃었다. 내가 정말 자기를 좋아하는 걸 아는 거다.
멋지게 제복을 차려 입고 경찰서 마당을 걸어가는 남자 경찰관이 눈에 띄었다. 그 경찰관은 얼마 동안 함께 근무했던 L 경위였다.
픽사 베이 - 교통경찰
2012년 세종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후 나는 그와 외국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경찰관도 아닌 일반직 공무원을 발령 낸 것은 정부 세종청사와 그로 인한 건설현장에 외국인 근로자, 그리고 다문화 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였기 때문이었다.
보통 인사이동을 할 때에는 본인이 담당했던 업무를 희망하고 부서 배치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야 업무 추진도 수월하고 담당자가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업무에 대해서는 문외한(門外漢)이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만 앞섰다. 계장님도 직원들도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차 배우면 된다.>고 위로하였지만 '못한다'라고 드러내 놓고 말할 수도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와 함께 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업무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는 꽤적극적이었다. 그의 아내 또한 경찰이라 그런지 여직원을 대할 때도 예의가 바르고 배려심 또한 깊었다.
그와 함께 맡았던 외국인 관련 업무 성격상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외근 활동이 많았다. 그날도 나는 그와 범죄 예방활동을 위하여 신도시(新都市)의 한 건설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뜨거운 중동지역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큰오빠 생각이 났다. 가장(家長) 역할을 해야만 했던 큰오빠의 노고(勞苦)에 새삼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졌다.
그와 나는 외국인 상대 범죄 예방활동을 마치고 그들이 생활하는 숙소를 방문했다. 모두가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이라 숙소 관계자를 만나 인사를 하게 됐다.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중에 마치 벼락을 맞은 거처럼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이 숙소 근처에 있는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논 주인(主人)이 이들을 경찰에 신고해 지구대(地溝帶)까지 다녀왔다.>
베트남 청년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논 사이의 제초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미꾸라지를 논에 뿌려 벼농사를 짓는 유기농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네 나라에서도 쉽게 미꾸라지를 잡아 요리를 해 먹기 때문에 잡아도 되는 거로 생각한 것이었다. 논 주인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한 후 베트남 청년들을 선처해 줄 것을 부탁하여 그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그도 외근 활동을 하며 이런 에피소드를 듣는 게 처음인 거 같았다. 사무실로 들어온 나는 '베트남 미꾸라지'에 대하여 검색을 하였다. 베트남어로 '까께오(Cakeo)'라고 불렀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탕이나 구이를 만들어 먹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외근 활동을 나갈 때면 사전 준비를 하였다. 오늘 만나야 할 대상은 어느 나라에서 왔고 우리나라에는 왜 왔는지 또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등등......
픽사 베이 - 경찰보트 수상활동
시간이 흐르면서 업무에 대해서도 외국인을 만나는데도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 가정을 위해서 경찰에서 해결해줘야 될 게 무엇인지 듣고 사업 추진을 진행하였다.
지금은 그 업무를 내려놓고 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날 '베트남 청년들의 미꾸라지 사건'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거 같다.